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거제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가에서 하룻밤

다연바람숲 2012. 11. 24. 21:31

 

 

 

 

 

 

그런 밤이 있었지요.

사납게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고 빗소리인 듯 파도소리인 듯

차르르 몽돌 구르는 소리 자장가 삼아 잠든 밤이 있었지요.

하필이면 찾아든 그 방의 창이 하늘로 열려있어

후두득 후두득 떨어지는 빗소리에 빗방울의 무늬까지 들리던 밤,

세속의 여자 둘이라면 밤을 새워 나눌 이야기도 많았을 것이지만

생전 처음 비구니 스님과 한방에 누워 고요와 침묵을  빗소리에 묻는 평안한 밤이었지요.

 

잠결인 듯 꿈결인 듯 빗소리 잦아들고

누운채 마주 바라봐지던 천정으로 난 창으로 새벽녘의 빛이 스며들 즈음

홀연히 혼자 나선 바닷가에서 만난 풍경들이지요.

 

가라고 가랑비

있으라고 이슬비

보라고 보슬비 라면

그 날 아침 몽돌해변에 내리던 비는 보슬보슬 보슬비라고 불러볼까요?

 

파도에 씻기고 씻겨 맨돌맨돌해진 몽돌 하나 주워 주머니에 간직하던 그 아침,

세상의 파도에 쓸리고 씻긴 나는 모난 귀퉁이  닳고닳아 둥글어는졌는지

내 안을 자꾸만 들여다 보았더랬는데

어떤 세상과 사람에도 부대낌없이 그저 맨돌하게 닳아지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이겠지요.

 

아직도 가끔 그 밤, 그 아침,

나를 채찍처럼 불러세우던  그 바닷가의, 차르르 차르르 몽돌 구르는 소리를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