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걷기 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다연바람숲 2012. 9. 6. 12:05

 

 

 

' 대기 속에는 바람에 울리는 자명금 같은 미묘한 음악이 가득하다. 허공의 저 높은 곳을 덮고 있는 아득한 궁륭 밑에서는 선율이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울린다.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들의 귓가로 와서 스러지는 음악이다. 마치 대자연에도 어떤 성격이 있고 지능이 있다는 듯 소리 하나하나가 깊은 명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 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들을 통해서 내 힘과 정진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소리들이 침묵의 한가운데로 흐르지만 그 침묵의 배열과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그 소리들이 침묵의 존재를 드러내주고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떤 장소의 청각적 질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 준다. 침묵은 감각의 한 양식이며 개인을 사로잡는 어떤 감정이다.

 

'우리들의 영혼은 침묵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하여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무는 그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침묵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리의 사라짐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는 자질, 공간에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의 가벼운 맥박이다. '마을들을 떠나 숲이 가까워지면 나는 '침묵'의 개들이 달을 보고 짖는 소리를 들으려고, 사냥감이 다니는 길로 그 개들이 나와있는지 어떤지를 보려고 이따금씩 귀를 기울인다. 달의 여신, 사냥의 여신인 다이애나가 밤 속에 있지 않다면 밤이란 무엇이겠는가? 나는 여신 다이애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침묵이 메아리친다. 음악이 된 침묵에 나는 황홀해진다. 귀에 들리는 침묵의 밤! 나는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침묵은 인간의 마음 속에 돋아난 쓸데없는 곁가지들을 쳐내고 그를 다시 자유로운 상태로 되돌려놓아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그리하여 그가 몸부림치고 있는 일터를 말끔히 청소해놓는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아토스 산중에서 어떤 친구와 함께 카리에스로 인도하는 포도를 걷는다. '우리는 무슨 거대한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바다, 밤나무 숲, 산, 그리고 저 위에는 열린 하늘이 마치 궁륭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침묵을 깨뜨려보려고 친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야? 그러자 그 친구는 내 어깨를 가볍게 짚으면서 대답했다. - 말하고 있잖아. 천사들의 언어인 침묵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는 갑자기 성이 난 듯 이렇게 내밷았다. -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어? 야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마음에 날개가 돋아나서 날아가고 싶어졌다고? 이제 천국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고? 말, 그리고 또 말! 입을 다물어야지.'

 

우주와의 합일되는 느낌, 일체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감정은 깊은 내면의 어떤 성스러움과 관련이 있는 것인데 그 성스러움은 수다스러운 것을 두려워한다. 더할 수 없이 약한 시간의 꽃병을 깨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걷기 예찬> 침묵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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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권하고 선물해주신 분의 깊은 뜻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걷는 일의 의미,

걷는 동안 맞이하고 누리는 우주와 세계와 자연과 나 자신과의 만남,

어느 한 페이지도 허투로 흘려보낼 수 없는 소중한 말씀들입니다.

 

오늘은 그 걸음 중에

고요와 침묵의 페이지에 함께 동행하길 권합니다.

 

더할 수 없이 약한 시간의 꽃병을 깨지 않기위해

쉿! 다만 침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