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몰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
아직은 햇살이 눅눅합니다.
엷은 먹구름으로 뿌연한 하늘이 도통 푸른빛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언제쯤 뽀송뽀송한 햇살이 길건너 빈 가지에 꽃을 피우려나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어제보다 한결 순해진 바람 속엔 봄의 향기가 스며있는듯도 합니다.
자꾸만 사람 속에서 사람의 길을 잃습니다.
세상엔 참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스스로 누에고치같은 외로움의 집을 짓고사는 사람도 있구나
마음 한켠이 짜안해지기도 하는 봄날입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그래도 다연에 앉아있으면 세상이 참 평화롭게 느껴집니다.
다연의 문을 열고 오는 이들의 마음들이 참 따스합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한쪽을 비우면 또 한쪽이 채워지는 충만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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