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나의 침묵은 / 조용미
불행이란 몸을 가짐으로써 시작되는 것
몸이 없다면 어디에 불행이 있을까*
봄날 나의 침묵은 꽃핀 나무들로 인한 것,
하동 근처 꽃 핀 배나무밭 지날 때만 해도
몸이 다시 아플 줄 몰랐다
산천재 앞 매화나무는 꽃 피운 흔적조차 없고
현호색은 아직 벌깨덩굴 곁에 숨어 있다
너무 늦거나 빠른 것은 봄꽃만이 아니어서
한잎도 남김없이 만개한 벚꽃의
갈 데로 다 간 흰빛을 경멸도 하다가
산괴불주머니 텅 빈 줄기 푹 꺼져들어가는 속을
피리소리처럼 통과해보기도 하다가
붉은 꽃대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몸이 견딜 만하면 아팠던 때를
잊어버린다 내 몸이 늘 아프고자 한다는 걸,
누워 있으면 서 있을 때보다 세상이 더
잘 보이는 이유를 또 잊어버린다
통증이 살며시 등뒤로 와 나를 껴안는다
몸을 빠져나간 소리들 갈데 없이 떠도는
꽃나무 아래
*노자의 「도덕경」에서 인용한 글
*
부슬부슬 봄비가 내립니다.
이 비 그치면 사방 봄꽃 열리는 소리 들릴터이지요.
나이가 들어서인가 봄이 되면서 이상하게 식물이 좋아진다고
우리 다연의 바깥 양반께서 몇며칠 날라 온 초록이들이 또 많아졌습니다.
어떤 것은 꽃이 피고 어떤 것은 연두빛이 꽃빛같고 작고 작은 소나무 분재도 하나 들였습니다.
티비 드라마라고는 무신 정도의 남성적인 드라마만 볼 것 같은 터프한 모습의 남정네가
어제는 해를 품은 달의 마지막회를 나란히 손을 잡고 앉아 볼만큼 얼마나 감성이 여려졌는지
이제 초록의 생명들이 어여쁘고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어여쁘고 또 봄이 어여쁜 것이겠지요.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은 바깥 날씨에 적응하기엔 여린 것들이어서 무거운 실내에 자리해 두었지만
어디 꽃소식 들리고 봄바람에 살랑살랑 나비 날개 깃들고 햇살이 한겹 옷을 벗길만큼 순해지면
지금은 더없이 황량한 다연의 유리창 앞으로 예년처럼 또 한번 작은 뜨락을 꾸며봐야겠지요.
봄비 내리는 봄날입니다.
눈에 띄게 새롭다 느껴질만큼의 풍경이 아니어서, 사뭇 익숙한 풍경이어서
연두빛과 꽃빛 넘어로 슬며시 풍경을 담아보기만 합니다.
봄날에 계신가요? 꽃 피는 봄날 꿈꾸고 계신가요?
비가 내려도 그 가슴, 가슴 따뜻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모처럼의 안부도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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