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미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누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봄날입니다.
창밖의 하늘은 앞집 낮은 처마 끝에도 맞닿을만큼 흐리게 내려앉았지만
한나절 난로불을 지피지않고도 추운 줄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다연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들의 첫마디도 이젠 춥다란 말이 아니라 봄이라는 말이 더 많습니다.
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의 한구석에서 앙증맞은 초록들이 눈을 뜨고 겨우내 지친 초록 사이로 새순들의 연두빛 곱기만합니다.
다연의 문쪽으로 옮겨놓은 백화등에도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면 다연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백화등 아름답고 환한 꽃향기가 진동할 것 같습니다.
나름 빠질 것 빠지고 새로이 공간을 꾸민다고 꾸몄는데 사진상으로 보니 별 변화가 보이진 않습니다.
아직 난로가 차지하는 공간때문에 중앙의 변화는 어렵다는 핑계를 두고 난로가 사라지는 꽃날에나 한바탕 뒤집기라도 해봐야겠습니다.
봄날입니다.
오늘은 어쩐지 안개꽃 한다발을 사들고 오고싶어집니다.
그 사이 내가 좋아하는 후리지아 몇송이도 노랗게 무늬를 넣어보고 싶어집니다.
올해는 꽃샘 추위로 벚꽃의 개화가 예년보다 늦어질거라는 예보가 있지만
마음의 봄꽃은 예년보다 훨씬 일찍 꽃이 필거란 예감이 듭니다.
모두 안녕하시지요? 다연도 안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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