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천리향 향기가 아름다운 다연의 봄날

다연바람숲 2012. 3. 30. 20:09

 

다연을 위해 준비해주신 화분을 가져가라고 어제 기별이 온걸

오후에 찾아뵙겠다고 넙죽 대답은 해놓고 이 정신머리가 깜빡을 했던거지요.

재작년 선물해주신 백화등이 막 꽃잎을 열기 시작하는데 그 꽃향기를 열면서

죄송하게도 아드님의 차를 타고 직접 저 많은 화분을 전해주러 달려오셨더랬지요.

지나실 때마다 들러 얻어마신 차값이라고 하시지만 그 분의 사랑이고 마음이고 인심인걸 제가 왜 모르겠어요.

하나하나 정성스레 옮겨심고 정성을 들인 어여쁜 것들을 늘 과분하게 받는 마음이 그저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지요.

 

저 작은 화분 하나하나 다독이시며 그 손길 얼마나 분주하셨을까요?

십년 전 먼 외국 여행길에서 사연도 많게 들여와 키운 오색꽃을 심으며 그 마음은 오죽이나 아련하셨을까요?

그 마음과 정성을 들인 것들을 달려가 받아오지 못하고 직접 걸음하게 하셨으니 저도 참 염치가 없는 사람이지요.

 

몇며칠 도대체 제 속내를 드러내지않던 하늘이 어제부터 펑펑 울어대더니 바람 끝이 잠시 찹니다.

그래도 어느 울타리엔 개나리가 피고 어느 집 담장 너머엔 목련봉오리가 봉긋합니다.

하늘이 흐려도 바람이 잠시 심술을 부려도 비가 내려도 봄은 어느새 가까이 아주 가까이 와있단 것이겠지요.

 

어떤 사람은 진심을 다해도 진심을 알지 못하지요.

어떤 사람은 사람을 믿지못해 홀로 외딴집을 짓지요.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누군가에게 상처만 주지요.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말처럼 봄처럼 짧은 인연들만 스쳐가게 하지요.

 

스스로 마음을 열어 사람 속에 있지못하면서 세상만 탓하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 잔뜩 겨울옷을 겹쳐입고 싶던 날에 선물 받은 마음들로 다연이 환하고 따뜻해졌습니다.

쟁반 하나 채워 들고오신 어르신의 마음과 사랑이 사람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어쩌면 내가 받는 이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세상에 갚는 법이 서투른 저의 탓이라고 반성하게 합니다.

작은 토분 관에 심어 온 천리향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 향기가 천리를 가는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백화등도 제법 향기를 지닌 꽃의 입술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이 앙 다물고있던 이기심을 벗어낸 넉넉함 같습니다.

 

봄날보다 꽃보다 더 큰 마음,

삶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가르침을 선물해주신 그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