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비 내리는 화요일, 작은 풍경들을 담다

다연바람숲 2012. 4. 10. 18:17

 

찬비 내리고  / 나희덕
                           -편지 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시집 <그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봄비가 내리는 화요일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보이지않는 빗방울들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우산 위를 구르는 걸 봅니다.

슬레이트를 덧댄 샵의 뒷편에선 통통통 투투투 빗방울의 소리도 간간히 들려옵니다.

오다말다 간격을 두고 내리는 비는 젖다말다 입술이 파리해진 꽃잎에도 스며듭니다.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손에 들었던 책 한 권을 덮고도 그 여운으로 가슴은 종일 시립니다.

심란한 봄날을 다스리느라 편식없이 마구잡이로 몇 권의 책을 읽어대는 동안 봄날이 깊었습니다.

어쩜 샵의 이것저것 쓰다듬어주고 이름 불러주는 일에도 많이 소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참 평안해지는 시간입니다.

문득 오래 바라다보는 회색빛의 하늘도 젖은 거리도 비내리는 풍경도 고요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