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북상하면서 세력이 많이 약해졌다고해도 태풍 무이파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겠지요.
간혹 아주 어쩌다 은혜처럼 햇살이 내리쬐이기도 했지만 또 빗방울이 쏟아지기도 했어요.
걸음을 걷다보면 햇살 아래다 싶다가도 몇걸음 떼지 못하고 또 비에 젖기도 했어요.
향기로운 바람이 불었어요.
문득문득 묻어오는 비냄새도 참 좋았어요.
유난스럽게 바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부는 바람에 마음의 그늘 싹 날려버리라고 누군가 손잡고 나서준 길이었는데
따라나서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람 속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오래오래 서있어 보기도 했어요.
길을 잃고 나를 떠나갔던 내가 내게로 돌아오는 의식처럼 그 순간이 참으로 고요하고 평안했어요.
어디로 눈을 돌려도 사방이 초록,인 공간들은 가끔 또 다른 시공 속의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불현듯 따라나선 길이라 카메라를 챙겨가지 못했는데 그래도
휴대폰 카메라로 잡은 시간과 풍경들이 아름답게 남겨져서 기분이 정말 좋아요.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유안진
한눈 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 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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