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은 / 장옥관
멀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건 아니다
가깝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들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풍경 때문에
보이지 않던 먼지 낀 방충망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눈의 허기 때문에
몰랐던 안경알에 묻은 지문
흐린 날은 잘 보인다
너무 밝아서 보이지 않던 것들
행복한 날 쏟았던 식탁보의 찻물 얼룩이나
지나친 확신이 놓친 사물의 뒷모습
흐린 날 눈감으면 비로소 보인다
만지면 푸석, 흙먼지 피우며 으스러질
어제의 내 얼굴조차도
*
며칠째 흐린 날이었지요.
마음도 스산하니 오래 가라앉았었지요.
멀미가 날듯 속도전으로 잎을 키운 길 건너의 나무들은
그 가지 위의 허공을 이젠 완전하게 덮어가는 중이지요.
참 더디게 당도했던 계절이 가는 길은 왜 그리도 서두르는지
뒷꼭지 잡고 떼를 쓰고싶은 날에 흐릿하게 또 무던한 봄날이지요.
너무 밝은 봄날이어서
자꾸 문밖의 먼 곳만 바라보던 마음이
흐린 날에 가만이 앉아 가까이 있는 것들과 오래 눈을 맞추었지요.
너무 밝아서 보이지 않던 것들
흐린 날 눈 감으면 보이지요.
오독 난독 불치로 읽지못하던 사람의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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