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봄날의 저쪽 혹은 이쪽

다연바람숲 2011. 4. 18. 00:02

저쪽 / 정병근

 

 

꽃이 피는 건, 어딘가에

그만큼 꽃이 안 핀다는 말

환하게 눈 밝히는 것들의 꽁무니마다

안 보이는 암흑의 심지가 타고 있다는 말

어째서 꽃은 저토록 피고

나무들은 내 쪽으로만 몸 밀어내는지

존재의 배꼽을 따라가면 거기 또 다른

존재 아닌 존재가 텅 비어 있다는 말

들리는 것만 듣고 보이는 것만 보는

나는 불치의 귀와 눈을 가졌네

내 지문(指紋)으로는 한사코 안 만져지네

알 수 없네

지금쯤 저쪽 나라에 가면

나 아닌, 꼭 나만큼의 내가

부지런히 죽고 있을 거라는 말

 

*

 

내가 바라보는 봄이 오늘 환하다는 건

그만큼 봄이 간다라는 말과 같은 말

 

올해 내가 누린 봄이 아름다웠다는 건

보낸 뒤의 아쉬움이 클거란 말과 같은 말

 

들리는 것만 듣고 보이는 것만 보는

나는 불치의 귀와 눈을 가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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