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계절이 문을 열고 사라지고 또 다른 계절이 또 하나의 문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은 황급히 문을 열고 이봐, 잠깐 기다려, 할 얘기가 있는데 깜빡 잊었어. 하고 소리친다.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문을 닫는다. 방안에는 벌써 또 하나의 다른 계절이 와 의자에 앉아서 성냥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다. 잊어버린 말이 있다면 내가 들어 줄게, 잘하면 전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그는 말한다. 아니, 괜찮아, 별로 대수로운 건 아니야, 하고 사람들은 말한다. 바람소리만이 주위를 뒤덮는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계절이 죽었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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