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순수 - 비우는말

사랑의 진검 / 도종환

다연바람숲 2010. 11. 14. 23:58

 

 

 

 

 

 

진검 ․ 1

                                      김 남 조

진검을 지닌 이
진 검 그것 외엔 가진 거 없는 이는
좀체 칼을 뽑지 않는다

한 남자와 한 여자도
사랑한다는 마음의 진검을
평생 동안 아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날에 서로
알고 있었다

          시집『귀중한 오늘』(시학, 2007)

 


*

 

진검을 지닌 이는 좀체 칼을 뽑지 않는다”  맞는 말입니다. 검을 아는 이, 정말 검을 쓸 줄 아는 이는 함부로 검을 뽑지 않습니다. 더구나 진검을 품고 다니는 이는.
함부로 칼을 쓰는 이들은 어설프게 칼 쓰는 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목검 다루는 법을 조금 배우고는 칼에 의지하여 으스대며 행세하고 싶은 사람은 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장난으로 칼을 휘둘러서는 더욱 안 됩니다. 칼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이들은 폭력배와 다르지 않습니다. 칼 쓰는 법을 제대로 아는 이들은 함부로 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칼로 얼마든지 다른 이들의 목숨을 벨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생각이 깊고 몸가짐이 진중합니다.  

시인은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진검을 지닌 이는 함부로 사랑의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장난으로 휘두르는 사랑의 칼은 폭력일 뿐입니다. 사랑의 진검을 뽑게 되면 누군가는 피 흘리는 날이 올 것임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진검을 뽑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목숨만 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목숨도 걸게 하는 것이지요. 사랑의 진검을 아는 이는 사랑에 목숨을 여러 번 걸어 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검이란 말 속에 두려움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성의 의미가 더욱 크게 들어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 사랑의 크고 높은 경지에 들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사랑을 진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진검을 평생 동안 아껴 칼집에서 꺼내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아름답지만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듯 서로는 상대방이 품은 사랑의 진검을 알아보았을 겁니다.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날에 서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 고요히 깊어진 그 사랑에 몇 십 배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칼을 뽑지 않은 채 두 사람이 견뎌 낸 인고의 세월이 보석처럼 빛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팔순의 나이에도 사랑의 진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인의 시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가 그 나이에 이르러도 날이 선 시정신을 가질 수 있을 지 두렵습니다. 우리의 시정신도 부디 녹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글    <도종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