採蓮哭(채련곡) /이은규 |
시방 달빛이 서천꽃밭 할락궁이*를 품고 있는 것 맞지요 그 여운에 살짝 열린 명창이 소리 한 대목 올린다네요 겁도 없이, 님은 어데로 간 곳 없고 조각배만 놀아나네** 오메나이! 귀신스럽기도 하네이, 물의 살이 조각배를 저미는 형국일 터, 어찌 소리꾼의 피가 만화방창으로 씻김하지 않고 배기겠나요 장구채를 살살 어르는 경지는 또, 무슨 경지인가요 허공 사통팔달로 너울거리다 맺히는 오방색 구름 가락, 덩도 아니고 덕도 아닌, 차라리 묵음이라 칭송하고픈 저 애간장이 보이나요 休止의 마디끝 장구피를 찢고, 다시 머리를 디미는 호기가 비치네요 한가락 한다하는 장구 장단에, 홀릉할릉 후려지는 명창이네요 맷맷하던 血途가 알맞게 부풀어 오르고 있나요 반 허공 신난고초로 감기다 풀리는 오방색 파랑 가락, 어느새 달뜬 명창이 고이 접은 수줍음을 여미네요 끝내 소리를 빌어 꽃잠에서나 터질 듯한 色을 치고 마네요 귀신을 삶아 먹었구로! 저런 소리를 뽑을까이, 나도야 후생 가서 낭군부터 섬길라네*** 새봄 애간장이라도 설설 졸여 낭군님의 입맛을 돋우고 싶나요 흥청이 망청인 낭군이라도 달빛을 탕진하고도 남을, 숨은 솜씨가 빼어나기 그지없나요 살의 결마다 별이 돋는 기적이 재생되긴 할까요 물의 살맛에 무거워진 조각배와 같은 나날들, 생의 한때가 다하면 다음의 한때가 입덧될 거라고, 다독이는 장단의 마디마디이지요, 여백 위로 스며오는 가능태의 풍경들, 감히 그 美色을 바랜 단청의 처마 끝까지 부추기고 싶은 시간 저만치 새보얀 볼빛의 귀명창이, 소리 한 대목 탄다네요 겁도 없이, 덜 여문 소리들, 연밥 씨방석 구멍으로 쏘옥 빨려 들어가네요 진흙과 천년동안 내통하여 비로소 싹 틔운 연밥을 내보이며, 영판 까무라쳐도 좋을 명창의 소리샘과 바꾸자며 절절 보채네요 일생, 소리에 맞아 양씬 띠앗띠앗해도 무량해한다면야! 달빛이 정전이네요 제아무리 꽃감관 할락궁이라도, 도환생꽃에 핏빛 혀를 적시지 않고 배기겠나요 * 제주도의 巫歌, '이공본풀이'에 나오는 서천꽃밭의 神. **, *** 민요 採蓮哭 중에서. 시작 노트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지, 귀신과 귀신스러움의 경계에 핀 저, 꽃의 哭을 들으시라! 약력 -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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