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해리 1, 2 / 공지영

다연바람숲 2019. 1. 30. 13:44




-외로움이 나이를 먹고 늙으면 쓸쓸함이 되는 걸까? 외로움이란 단어 말고 쓸쓸함이라는 단어에는 세월의 더께같은 것, 오래되고 쿰쿰하고 약간은 궁상맞은 땀내같은 것이 배어 있는 듯했다. 
 
-언론의 투명성과 더불어 청렴지수도 함께 떨어져 내렸다. 이럴 때 합리적이어야 할 세상은 정글로 변한다. 지성은 사라지고 감정과 원시적인 애증만 남으니까.. ㆍㆍㆍ이럴 때 거대한 악은 작은 악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이렇게 정글로 변한 세상의 숲에서 언제나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죽어나가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절대로 갖지 마시고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이런 인간들은 대개 끈질기고 뻔뻔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해요.  필요하면 엄청 비참한 지경이 된 듯 불쌍하게 굴 거예요. 이들은 가면을 쓴 코스프레엔 달인들이예요. 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부류가 있어요. 흔히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좋은 쪽으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게 이들의 토양이에요. 이게 이 사람들 먹이예요. 그래서 상식을 가지고 사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당해내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 안 돼요. 아무리 작은 하나라도 다 의심해야 해요. 그래서 싸움이 정말 힘들어요. 
 
-알아요? 악은 지루하고 그래서 공허해요. 그리고 기껏해야 변명하죠. '이거 원래 이러는 거야.' 
 
-"부탁이 있어"....
"약속해줘. 최소한 명백하게 악을 목격하게 된다면 모른 척하지 말아줘." "멱살을 잡지는 못해도 소리쳐줘! 여기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그냥 원래 다들 이래요. 나쁘게 생각하면 한도 없어요. 이러지 말자고." 
 
-사람은 안 변하는 거 같아요. 만일 어떤 친구가 변했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가 어려서 사람을 잘못 본 걸 거예요. 
 
-그들은 독약을 먹고 있어요. 그게 독약인 줄도 모르고, 안 죽네, 맛있네, 이러고 있다고요. 그들이 쥐약이 든 빵을 계속 먹고 있는데, 왜 화가 나요? 안타깝지요. 
 
-네 자신을 망치는 싸움을 해서는 안 돼. 더 사랑할 수 없이 증오로 몰아가는 싸움을 해서는 안 돼. 그러다가는 적과 닮아버려요. 비결은 이거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훼손당한 그 가치를 더 사랑하기에 싸워야 해. 
 

 
어떤 진실은 마주하는 것조차 불편하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되고 있다고 믿고싶지 않은 일들이 공공연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허구라고, 소설을 통해 누구를 떠올리든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사정이라 전제한 작가의 심정 또한 이해를 한다. 
 
그래서 소설로 읽었다.
허구라고, 상상으로 빚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위안하며 읽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정말 그럴 것이라 믿었다.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소설조차도 현실 그 이상을 세밀하게 재현해내지 못한다고 본다면 우리가 정작 마주해야할 진짜 세상은 얼마나 더 끔찍하고 부당하며 잔혹한 먹이사슬의 정글일지 짐작이 간다 . 
 
공지영이다.
다시 도가니의 도시 무진이다.
은밀하고 음산하고 은폐된 안개 도시의 이야기이다.
달의 양면같은 안개 저 편 인물들의 추악한 이야기이다.
어떤 사건은 언론으로 접했고 어떤 인물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어떤 시간과 일들은 우리가 막 지나쳐 온 역사이다.
도가니에서처럼 사회의 부정 부패 비리에 대하여 작가의 고발의식은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있고 그녀만의 이념과 비판 또한 확실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허구일 뿐이라고 전제했다.
그래서 아쉽다. 용두사미다. 시작은 거창한데 끝이 약하다.
어떤 식으로 외치고 고발하고 문제 제기를 하든, 선이 악을  경계하고 당당하게 무너뜨리거나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지만.... 그래서 무진과 역사의 결말은 독자이신 당신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끝장내주세요- 라고 여지를 남겨준 건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래서 더 아쉽고 그냥 로맨스로 끝을 내버리기엔 무언가가 몇 프로 모자라다.
막말로 어차피 소설이고 허구인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통쾌한 결말을 기대했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인 것일까? 
 
사실 그 누구보다 작가인 그녀가 통쾌 상쾌 유쾌한 결말을 더더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