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다연바람숲 2019. 1. 23. 11:58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수 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 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작가의 말 중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은 <고백>에서 미주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는 친구 진희에 대해 안도하며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되짚던 말이다. 상대에게 견고한 신뢰가 실려 있는 이 말에는 꿈결을 걷는 듯한 나른한 달큰함이 있다.
...
자신이 느끼는 안도와 행복의 풍경이 언제나 상대의 외로움과 아픔을 철저히 밀봉했을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선연하게 의식하는 예민한 윤리, 이 서늘한 거리 감각이란 최은영 소설의 요체이자 매력이다.  이것에 대해 알고 나면 왜 인물들이 쉽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끝내 울음을 참아내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강지희 해설, 끝내 울음을 참는 자의 윤리 중에서 

 

 

누군가 글을 참 잘 쓰는 작가가 있다고 했다.
최은영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그렇게 만났었다. 
 
글을 정말 알밉게도 잘 쓰는 작가가 있다고 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을 누군가에게 권하며 가슴이 말랑말랑해지는 섬세하고 따뜻한 경험을 할 거라고 이젠 내가 말한다.

이 작가... 참 따뜻하다.
불현듯 어느 소설의 한 페이지를 펼쳐읽어도 마음의 잔물결조차 섬세하게 그려낸  따뜻한 문장들을 만난다. 누군가에겐 추억의 시간일 것이나 누군가에겐 고통스런 성장통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미숙하고 서툴러 부끄러운 시간일 것이나 그 시간의 실선들이 현재의 성숙을 이끌고 왔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7편의 단편으로 엮어졌다.
'미숙했던 지난날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 이라 요약된 책소개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10대와 20대 젊은 날의 초상들이 각기 다른 풍경으로 그려졌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 그 시절과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때의 마음
그 단단한 시간의 벽을 더듬는 사이 되살아나는
어설프고 위태로웠던 우리의 지난 날> 
 
그렇게....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은 오랫동안 잊고 지내 온 시간과 감정들을 액자 속의 빛바랜 사진처럼 마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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