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소년이 온다 / 한강

다연바람숲 2019. 1. 21. 14:03






- 처음부터 상황실장은 우리 목표가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만, 수십만의 시민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 때까지만.
지금은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그 말을 절반은 믿었습니다. 죽을 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중에서 
 

 
소년이 운다 라고 읽는다.
소년이 온다 라는 제목이 자꾸 소년이 운다로 읽힌다.
책표지를 가득 채운 안개꽃들이 수없이 많은 하얀 국화로 보인다.  
 
이것은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 아니다.
눈 멀고 귀도 막혀 그저 방관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그때 그 도시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알지만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지만 부정할 수 없고, 있어서는 안되지만 있었던 역사, 방사능 피폭처럼 잔인하고 아픈, 결코 되돌릴 수 없어 원통한 그 시간의 이야기이다. 
 
역시 한강이다.
화자와 시점을 달리해서 전하는 그녀의 언어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추천사의 말처럼 마치 그날 파괴된 영혼들의 못다한 말들을 대신 전하는 듯 하다. 그 마음, 그 표현들이 너무 정확하고 섬세해서 한없이 먹먹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아니, 그때의 나는 어렸다고 어이없는 변명을 하고싶을만큼 부끄럽고 아프게 한다. 
 
이런 소설이 있다.
5월 광주, 역사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
보라고, 똑똑히 마주하라고 증언하고 고요하게 외치는,
.

 
저기,
소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