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립반윙클의 신부 / 이와이 슌지

다연바람숲 2018. 2. 3. 16:45

 

 

 

 

 

@ 클램본

 

맞선 사이트에서 남자친구를 발견했다.

어쩐지 너무나도 쉽게 손에 넣었다.

인터넷 쇼핑을 하듯이 간단히 한 번의 클릭으로

정말 이런 식으로 남자를 만나도 되는 걸까?

그 남자도 나를 손쉽게 손에 넣은 여자라고 생각할까?

 

                                                        - page 15

 

@클램본

 

다른 방법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사귀었을까?

예를 들어 직장에서 만났더라면

우리는 사귀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니 절대로 사귀지 않았을거야

 

똑같은 전철의 똑같은 차량에 함께 타는 사이였다면,

아파트의 이웃이었다면 . . .

그렇게 만났더라면

우리는 사귀었을까?

 

이런 글을 쓰는 걸 그 남자가 알면 분명 파국을 맞겠지?

. . . 그쪽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 page 26 ~27

 

 

@ 클램본

 

결혼은 동시에 집안끼리의 문제다.

결코 사랑하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 따위 그만두고 싶어진다.

 

                                                                        - page 58

 

 

"흔히 있는 일이죠. 엄마라고 해도 여자니까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미나가와 씨도 한 시간 안에 저한테 빠져들걸요?"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자신감 같은 게 아니에요. 미나가와 씨가 저한테 빠진다면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빠져든 거니까요."

"무슨 말이에요?"

"본인한테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빠지는 거라고요."

"당신한테 마음이 있다고요?"

"아니요. 저한테는 관심조차 없으시죠. 아, 초콜릿 하나 더 드세요."

아무로가 멈춰 서자, 옆에서 걷던 나나미도 멈춰 섰다.

"못 느끼세요? 이 거리를?"

아무로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느샌가 두 사람의 거리가 서로 닿을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이 거리는 당신이 좁힌 겁니다."

나나미는 그 순간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서 누군가에게 기대고싶지 않으세요?"

나나미는 자신도 깨닫지 못한 본심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어서 깜짝 놀랐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  page 103~104

 

 

 

"인생은 어떤 기상천외한 일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너무 기상천외해도 곤란해요."

"그런가요? 날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야 재미있지 않나요?"

"힘들다니까요."

"사람은 모두 안전하고 평화로운 장소를 바라죠. 하지만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본능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그 충동을 가상의 존재로 치유한다고 할까요? 드라마나 뉴스, 스포츠, 게임도 다 자신들의 내면에서 적출해 접시 위에 올려놓은 기상천외의 본능 세포라고 할 수 있어요."

 

                                                      - page 168~169

 

 

나나미는 문득 생각했다. 이 세상이 옳다고 주장하는 정의나 선한 세계에는 사실 큰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 아무로가 말한 대로 현대인은 이 충동을 모조리 봉인해서 정의롭기 위해 노력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의나 선이라는 이름의 아스팔트를 모든 장소에 깔아 버린 탓에 흙이 사라지고 풀과 꽃도 살아갈 터전을 빼았겼다. 그런 상태로 변한 게 아닐까?

 

                                                      - page 172

 

 

"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 . ."

"점원이 내가 산 물건을 봉투에 넣어줄 때,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 손은 나를 위해서 분주히 과자나 반찬을 봉투에 담아주는 거야."

"나 따위를 위해서, 그 점원이 부지런히 봉투에 물건을 담아준다고. 이런 쓰레기 같은 나를 위해서.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꽉 조여 오면서 괴로워져서 울고 싶어져. 나에게는 행복의 한계가 있어. 더 이상은 무리다 싶은 한계가 그 누구보다 빨리 찾아와. 그 한계가 개미보다 작아. 이 세상은 사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잘 대해 주거든. 택배 아저씨는 내가 부탁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 주지. 비 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 적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돈은 분명히 그런 걸 위해 존재할 거야. 사람들의 진심이나 친절함 등이 너무 또렷이 보이면 사람들은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다들 부서지고 말걸? 그래서 모두 돈으로 대신하며 그런 걸 보지 않은 척 하는거야. 나나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부서져 버릴 것 같아."

 

                                                     - page 286

 

 

 

*

 

 

선물 받아 옆에 두고도 읽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가장 빨리 읽어버린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고도 오래 생각이 많았다.

감동 내지는 감응에 대하여 선뜻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루를 못 넘기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는 건 나름의 흡입력이 있고 흥미롭게 읽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지만,

석연치 않음, 개운하지 않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생겨나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제기했다.

그건 아마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 시대의 씁쓸한 단면에 대하여 인정하고 싶지않은 나름의 아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통은 편리해지고 빈번해졌지만 감정적으로 더 개인적이고 외로운 시대라고 한다.

전화번호부에 수 백명의 지인이 있고 SNS상에 수많은 팔로워가 있어도 정작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따뜻한 위로 한 마디가 필요할 때, 스스럼없이 만남을 청하거나 전화 걸 사람이 많지 않은 시대라고 한다.

소통은 쉬워졌지만 마음 나누기는 어려운 시대, 사람 사이,사람들 속에서조차 외로움을 느끼는 시대,

이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는 그런 현실, 그런 세태 속의 군상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펼쳐놓았다.

 

SNS를 통해 결혼할 상대를 만난다.

결혼식 하객은 대리 출석 하객으로 대신 한다.

하나의 거짓말을 위해 또 다른 거짓말들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너무 서툴고 낯설게 결혼과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게 된 나나미와,

돈이면 무엇이든 안되는 일이 없는 만능 심부름 센터의 아무로와 립반윙클의 절묘하고도 서글픈 삶의 이야기.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살고싶던 내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소설이다.

 

립반윙클의 삶의 세계에 대하여 나나미는 "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세계, 있어서는 안될 세계. 만일 그렇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면 안되는 인간은 없을지도 모른다" 라고 했다. 어쩌면 이 또한 이와이 슌지가 이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를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숨기고 지탄받고 비난받을 일일지라도 그 일로 인해 누군가는 행복할 수도 있고 그것이 삶의 활력이고 이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살면서 거저 주어지거나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유나 목적이 뚜렷할 때 내게 오는 것을 내가 찾아 갖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한다.

 

이와이 슌지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영화를 본 후, 다시 찾아 본 영화 러브레터의 감동을 주었던 감독이다.

그의 감성을 믿고, 영화화 되었다는 립반윙클의 신부 속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었다.

나와 같은 세대들에겐 어쩌면 낯설고 거부감이 느껴지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납득이 쉽지는 않았으니까.

소설을 납득이나 하자고, 이해 같을 걸 하려고 읽지는 않겠지만 냉철하고 차가운 현대 사회에 대한 적나라한 이면들을 쉬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아무리 그럴 리가 없다고 반문하고 부정해도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어렵지 않은 일이므로.

 

그럼에도 해피 엔딩이다.

누군가의 죽음 혹은 이별과는 상관없이 해피 엔딩이다. 나나미 그녀가. . .

살았으므로, 살아갈 것이므로, 진정한 사랑을 찾았으므로, 행복을 찾는 법을 알만큼 성숙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