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소설

다연바람숲 2018. 1. 31. 18:05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이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또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 소설 <쇼코의 미소> 중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 소설 <신짜오,신짜오> 중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이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생의 한 지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사 때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 소설 <언니,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

 

 

두려움은 내게 생긴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보다 나은 인간으로 변모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소거되어버릴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에 머물기를 택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안에 있었다.

우리는 예의 바르게 서로의 눈을 가렸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야 내가 먼저 그의 눈에서 내 눈을 뗐고, 우리는 깨끗하게 갈라섰다. 사랑한ㄴ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 소설 <한지와 영주> 중

 

 

 

 

엄마는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김치가 잘 익었다고 감사, 돼지고기 가격이 내려 마음껏 먹을 수 있음을 감사, 발가락에 난 사마귀 치료가 잘된 것을 감사,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해주심에 감사, 외식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 일이 잘 안풀리면 일이 잘 풀릴 때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감사.

엄마의 감사 타령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엄마의 초라한 현실을 봤다. 언제든 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일에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언제든 양껏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돼지고기 가격이 내렸다고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돈이 있다면, 부유한 부모나 남편이 있다면 통증을 견뎌가며 매일 열 시간씩 서서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그녀는 차라리 엄마가 스스로의 처지에 솔직해져서 불평하기를 바랐다. 초라한 현실에 대한 엄마의 감사가 얼마간은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의 은혜가 하늘 같다고 했지만 여자는 자식이 준 사랑이야말로 하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미카엘라가 자신에게 준 마음은 세상 어디에 가도 없는 순정하고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가 세상에 소용없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그 많은 소용있는 사람들이 행한 일들 모두가 진실로 세상에 소용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자신을 소외시키고 변형시켜서라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부딪쳐 싸우기보다는 편입되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초대받고 싶었다.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 없다. 누구도.

 

 

                                                                                                                          - 소설 <미카엘라> 중

 

 

"너가 어른 되면 남자고 여자고 없다. 너가 여자여서 안 된다는 소리 듣거들랑 무식한 소리구나 하구 비웃어버려. 넌 뭐든 다 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 너 땐 남자구 여자구 마음 바른 사람이 잘 살거여."

 

넌 궁금한 게 많은 아이였잖여. 할머니! 부르곤 재미난 소리들을 잘했어. 개미들두 나처럼 이불 덮고 자? 하늘의 스위치는 누가 켜고 꺼서 아침이랑 밤이 와? 할민 그런 소릴 하는 너가 어디서 왔는지 신기했었어.  너라는 애를 모르구 사십 년 넘게 살았었는데 그때 넌 어디 있었냐. 어디서 와서 이런 신기한 얘길 하는 거여.

 

 

                                                                                                                           - 소설<비밀> 중

 

 

 

*

 

 

글을 정말 잘 쓰는 젊은 작가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추천받은 책이 쇼코의 미소였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않는, 읽던 책들을 뒤로 하고 쇼코의 미소를 먼저 읽었다.

읽으면서 몇 번이고 표지를 열어 책날개의 작가 약력과 작가의 사진을 확인했다.

이런 작가도 있구나. . . 이렇게 담담한 목소리로 소설을 들려주는 작가도 있구나.

작가의 환히 웃는 사진을 보면 조근조근 소설 속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7편의 단편 소설이 모여 쇼코의 미소가 되었다.

7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이야기가 다르지만

어느 소설 속에서나, 화자가 누구이거나, 작가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착각을 경험했다.

작가의 삶이 소설이 되었다는 격한 공감 내지는 그녀가 소설이거나 소설이 그녀라는 몰입 속에서 읽었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화려한 문법이나 숙련된 문체의 기교같은 것은 없지만,

담백해도 너무 담백해서 누군가의 일기장을 펼쳐보는 것 같은 담담한 문장들이,

오히려 나와 내 삶과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깊은 공감과 유대감을 갖게 한다.

 

낯설지 않다.

그저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는 겪었고, 누군가에게는 들었고, 너 혹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진부하지 않다.

그저 그런 이야기같지만 결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속 그녀들의 마음이 외면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이고,

내가 표현해 본 적 없는 시대와 순간의 말과 이야기이고,

그래서 어느 소설에서는 가슴의 통증을, 어느 소설에서는 눈물도 감당한다.

이것이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소설 쇼코의 미소가 가진 매력이고 힘이다.

 

오랜만에 여운과 감동이 오래가는 좋은 책을 읽었다.

최은영이라는 작가를 알게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