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청주 다연, 풀이 자라는 풍경에 대하여

다연바람숲 2018. 6. 4. 18:23

 

 

 

 

 

작년에 한해살이 꽃이 피고 진 빈 화분을 뒤란에 두었더니

거기서 풀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또 씨앗을 맺습니다.

 

뭐 거창하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건 아니지만

높고 긴 화분에 뿌리내린 지칭개꽃은 이제 홀씨를 날려보냈고

여리고 여린 척 하늘거리던 애기똥풀도 이젠 통통하게 씨앗을 맺었습니다.

같은 풀이어도 바닥에 자란 건 그냥 풀이고 화분에 자라는 건 화초같으니,

어떤 것은 제 집을 잘 찾아들어 격을 높였구나 싶은 것이 이런 차별도 경험을 합니다.

 

냅두니 제 멋대로 뒤란을 초록으로 물들인 것들,

오고가며 밟히는 질경이조차 칸칸이 영역을 넓혀가는 걸 보니

제가 있을 곳을 알고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사방 둘러보면 길가 가로수 아래조차 막 자라는 풀들이 있고,

없었으면 싶은 곳까지 잡풀이라 욕먹으며 자라는 풀들이 넘쳐나지만

그것이 이 계절의 일상적인 풍경이고 특별할 것 없는 자연의 모습이겠지만

내 뒤란의 별 거 아닌 잡초들이 더 빛나고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삭막할 수 있는 초라한 샵 뒤의 작은 귀퉁이를 생명으로 채워주고 있기때문이지요.

 

샵 앞쪽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하고 화사한 식물과 꽃들에게 물을 줄 때

눈 밖 뒤란에 있는 풀들에게도 물을 줍니다. 그렇게 잘 자라라고 인사도 합니다.

어디에선가는 잡초로 천대받고 무시 당할지라도 내 영역에선 소중한 아이들이니까요.

 

샵을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어쩌다 마주치는 뒤란의 작은 풍경에 간혹 감탄사를 보냅니다.

보잘 것 없는 잡풀들이 제멋대로 자란 풍경이 어린 날 장독대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지요.

장독대도 잊혀져가는 기억의 풍경이지만 장독대에 자라는 풀들의 풍경도 이미 잊혀진 기억일테니까요.

 

그냥 두니 참 좋습니다.

풀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시들어 가고 또 다른 풀들이 다시 자라나고,

어쩌면 사람의 마음, 사람의 기억도 그런 모습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