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다연바람숲 2017. 8. 8. 14:46

 

 

 

 

해안의 모래가 야금야금 파도에 쓸려가는 것처럼. 어쨌거나 어디선가 흐름이 잘못된 방향으로 꺽여버린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럴 때는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올바른 흐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길은 반드시 내 쪽으로 돌아올 것이다.

 

                                                                                                  1권 page 79

 

"영혼의 존재를 믿으세요?"

"당신은 믿습니까?"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멘시키가 말했다. " 저는 영혼이 실재함을 굳이 믿을 필요 없다는 설을 믿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 그것은 영혼이 실재함을 믿지 않을 필요됴 없다는 설을 믿는 셈이지요."

 

                                                                                                  1권 page 282~283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1권 page 340

 

 

숲의 정적 속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인생이 지나는 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온다. 한 생각이 가고 다른 생각이 온다. 한 형상이 가고 다른 형상이 온다. 나 자신조차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씩 무너졌다가 재생된다. 무엇 하나 같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상실된다. 시간은 내 등뒤에서 조금씩 죽은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사라진다.

 

                                                                                                    1권 page 368

 

 

뭐가 정상이고 뭐가 정상이 아닌지, 뭐가 현실이고 뭐가 현실이 아닌지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야 기사단장이 귓전에 속삭였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두게나. 판단은 나중에 하면 돼.

 

                                                                                                    1권 page 475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 혹은 장차 손에 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것, 지금은 손에 없는 것을 동력삼아 나아가고 있다.

 

                                                                                                    1권 page 484

 

 

"역사에는 그대로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게 좋을 일도 무척 많다네. 올바른 지식이 사람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법은 없네. 객관이 주관을 능가한다는 법도 없어. 사실이 망상을 지워버린다는 법도 없고 말일세."

 

                                                                                                    1권 page 501

 

 

"진실은 곧 표상이고, 표상은 곧 진실이지. 그러니까 눈앞의 표상을 통째로 꿀꺽 삼켜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이야. 거기에는 억지 논리도, 사실도, 돼지 배꼽도, 개미 불알도, 아무것도 없다네. 사람이 그외의 방법을 써서 이해의 길을 나아가려는 건 흡사 물에 소쿠리를 띄우려는 짓이나 마찬가지야."

"구멍 숭숭 뚫린 물건을 물에 띄우는 건 누구에게나 의미없는 짓이지."

 

                                                                                                     1권 page 503

 

 

". . 왜냐하면 사람이 어떤 생각을 멈춰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멈춘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니까. 무언가를 그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나의 생각이고, 그 생각을 갖고 있는 한 그 무언가 역시 생각의 대상이 되거든. 무언가를 생각하기를 멈추려면 그걸 멈추자는 생각 자체를 멈춰야 해."

 

                                                                                                      2권 page 131

 

 

사람은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진 않는다. 그것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인지도 모른다.

 

                                                                                                      2권 page 217~218

 

 

"당신은 원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원할 만큼의 힘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 인생에서, 원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밖에 원하지 못했습니다."

 

                                                                                                       2권 page 298

 

 

" . . 훌륭한 메타포는 모든 현상에 감춰진 가능성의 물줄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시인이 하나의 광경 속에 또다른 새로운 광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당연한 말이지만, 최고의 메타포는 곧 최고의 시가 되죠. 당신은 그 또다른 새로운 광경에서 눈을 돌리시면 안됩니다"

 

                                                                                                       2권 page 415

 

 

"당신 안에서, 당신이 하는 올바른 생각을 붙들어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것. 그렇게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 그것이 이중 메타포입니다. 그것은 옛날부터 쭉 당신 안의 깊은 어둠에 살고 있었어요."

 

                                                                                                       2권 page 417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령 온몸의 관절이 마디마디 분해되더라도, 아무리 큰 고통이 따른다 해도,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지 않은가.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이 촉수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2권 page  424~425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 몰라."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어."

 

                                                                                                        2권 page 584

 

 

그래도 나는 멘시키처럼 되지 않는다.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가 자기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밸런스 위에 자신의 인생을 구축하고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에 달고, 끝나지 않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 내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귀찮은(적어도 자연스럽다고는 하기 힘든) 작업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2권 page 597

 

 

 

 

*

 

기사단장은 이데아이다. 곧 관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물과 상황은 상징적인 메타포이다. 곧 은유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과 사물들은 각각의 독립적인 개체이나 모두 연계성을 가지고 얽혀있다.

사실과 허구,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조차 소설 속에서는 모두 부질없고 의미없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발현되고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굳이 비현실이라 매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처 두 번을 읽었다.

what?

각각의 메타포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상징을 찾는 일은 오히려 쉬웠다.

why?

책을 덮고나서도 개연성에 대하여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지들이 흩어져 하나의 형상을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보는 것처럼 마지막이 몹시 산만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렇게 허술하고 만만하게 작품을 내놓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토록 이 기사단장 죽이기를 기다려 읽은 보람마저 의미없어 진다.

 

where?

나는 어디서 중요한 포인트를 놓쳐버린 것일까?

 

두 번째 읽으면서 비로소 소설 속의 흥미를 쫓느라 나 자신이 많은 부분들을 놓치며 읽었음을 깨달았다.

화자의 말을 빌어, 또는 기사단장과 멘시키, 그리고 등장하는 각각 메타포들의 입을 빌어 작가는

모든 상황과 개연성에 대해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하다싶을만큼 설명해놓았음을 알았다.

각각의 메타포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까지도 소설 속 그림이나 음악처럼 선명하게 남겨놓았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다란 그걸 찾고 발견하고 음미하고 내 안으로 전이시키는 작업을 동반한다.

 

하나의 관념을 말살시키고 새로운 관념과 세계로의 한 발,

제목이 주는 암시만으로도 이미 소설은 그 결말을 예고한 셈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작가의 전작 소설1Q84 에도 의미있게 등장했던 문장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도 컸다.

 

뭐가 정상이고 뭐가 정상이 아닌지, 뭐가 현실이고 뭐가 현실이 아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떤 최악의 상황에 버려지고 놓여질지라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는 힘,

그 믿음이, 또 간절한 소망들이 결국은 우리가 오늘이라는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라고 작가는 또 말을 하고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