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느림 / 밀란 쿤데라

다연바람숲 2017. 7. 27. 16:53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 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 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 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한 체코 격언은 그들의 그 고요한 한가로움을 하나의 은유로써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들은 신의 창(窓)들을 관조하고 있다고. 신의 창들을 관조하는 자는 따분하지 않다. 그는 행복하다. 우리 세계에서,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이다.

 

                                                                                                         Page 7~8

 

 

모든 것이 서로 이야기되는 세계에서, 가장 쉽게 가질 수 있는 동시에 가장 치명적이기도 한 무기는 바로 폭로이다.

 

                                                                                                          Page 14

 

 

퐁트벵에 의하면, 오늘의 모든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는 다 춤꾼들이요, 모든 춤꾼들이 또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춤꾼이 여느 정치가와 다른 것은 그가 권력이 아니라 명예를 갈구한다는 점이다.

 

                                                                                                          Page 25

 

 

" ~ 그래서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대중적 갈등에 개입하여, 어떤 가혹한 처사에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박해받는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당신이라고 어찌, 이 시대에, 춤꾼이 아닐 수 있거나 혹은 춤꾼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에 대해 신비의 인물 퐁트벵은 이렇게 대답한다. " 내가 춤꾼들을 공격하려 한 줄로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야. 나는 그들을 옹호한다네. 춤꾼들에게 혐오를 느끼고 그들을 비방하려 드는 자는 언제나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에 직면할 걸세. 그들의 정직성 말이네. 끊임없이 스스로를 대중에게 전시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춤꾼은 비난할 수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네. 그는 파우스트처럼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천사와 계약을 맺은 거야. 그는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며 그 작업을 천사가 돕는다네. 왜냐하면, 잊지말게. 춤은 예술이기 때문이야!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소재로 보려는 그 강박 관념 속에 춤꾼의 참 본질이 있어. 그는 도덕을 설교하려는 게 아니라, 도덕을 춤춘다네! 그는 제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감격시키고 눈부시게 하려는 거라네! 그는 마치 조각가가 자신이 조각중인 조각상을 사랑하듯 제 삶을 사랑한다네."

 

                                                                                                          Page 28~29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상황 하나를 상기 해 보자. 웬 사내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문득, 그가 뭔가를 회상하고자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자신이 방금 겪은 어떤 끔찍한 사고를 잊어버리고자 하는 자는, 시간상,, 아직도 자기와 너무나 가까운, 자신의 현재 위치로부터 어서 빨리 멀어지고 싶다는 듯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 한다.

 

실존 수학에서 이 체험은 두 개의 기본 방정식 형태를 갖는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Page 48

 

 

 

선택되었다는 감정은, 예를 들면, 모든 연애 관계에 나타난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정의상, 공덕 없이 받는 선물인 까닭이다. 공덕 없이 사랑받는다는 것, 이는 진정한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어떤 여인이 내게, 네가 똑똑하기 때문에, 네가 정직하기 때문에, 네가 선물들을 사주기 때문에, 네가 외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설거지를 해주기 때문에 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실망한다. 이 사랑은 뭔가 이해 관계에 의한 것인 듯하다. 한편 이런 말들은 얼마나 듣기 좋은가. 비록 네가 똑똑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고, 비록 네가 거짓말쟁이고, 이기적이고, 개자식이라도 난 널 미치도록 사랑해.

 

                                                                                                               Page 60~61

 

 

 

속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 한다는 것. 이 방정식에서 우리는 여러 필연적 귀결들을 연역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 우리 시대는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 한데 나는 이 주장을 뒤집어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시대는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이라고.

 

                                                                                                                Page 158

 

 

 

 

 

 

*

 

느림을 말하고 있는데 책에는 느림이 없다.

작가의 유려한 언어는 속도에 가속을 더할 뿐 제어 장치가 없다.

 

철저하게 화자이면서 관찰자이면서,

중세와 현재와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면서

그는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그는 그가 바라보는 모든 인물이 되기도 한다.

 

느림에 대한 고찰이야, 좋은 말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하는 말이고, 들어 본 말들이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얼마 전 읽은 터라 가볍게 선택한 책이었는데,

책이 전해주는 의미로서의 느림은 느리게 수긍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거침이 없었다.

이렇게 단 시간에 읽고 필사에 숙지까지 끝낸 책이 최근에 있었던가 싶다.

그건 내용이 결코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라,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춤꾼으로 표현되는 정치인들의 이야기,

요즘 티비에 등장하는 우리 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이 보여 웃음이 났다.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는 인간의 욕망, 사랑. .

본질은 같으나 속도의 차이라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고민해봐야 겠다.

 

나는 결코 빠르게 사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다.

모든 것이 느려도 너무 느린, 전형적인 충청도 사람이다.

생각도 느리고, 말도 느리고, 행동도 다 느린데 단 하나,

아니다싶은 것엔 결단이 빠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산다.

그런데 그 속도에 늘 오류와 실수의 위험이 존재하는 걸 잊으니 문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 아니 여전히, 언제나 느린 것들이 좋다.

 

속도의 발견,

느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