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백 년 동안의 고독 / 가부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다연바람숲 2017. 4. 25. 20:15

 

 

 

 

드디어 책장을 덮었다.

읽고 덮기를 반복하며, 뒤늦게 짬짬이 읽으려고 잡은 가벼운 책들을 먼저 읽어내고도

고작 중반부까지 읽어내는데 한 달여의 시간을 허비해 버렸고, 그나마도 펼치지 못한 날이 많았다.

 

혼자 자유로운 책읽기의 좋은 점은 밀린 숙제를 하듯 결코 서두를 일이 없다는 것인데,

이 책은 오래 덮었다 펼치면 이름과 족보에서 헷갈려 다시 앞으로, 앞으로 반복의 연속이었다.

멈추었던 곳으로부터 다시 몇 페이지 앞에서 출발을 해야 비로소 연결이 되는 책읽기의 반복,

결코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빽빽한 활자는 돋보기를 낀 시력을 쉬이 지치게하고

읽어도 읽어도 줄어들지않는 페이지는 결국 같은 페이지를 거듭 반복하게 하고

뒤늦게 반복되는 이름에 대한 강박을 극복하고 나서야 순조로운 책읽기가 가능했었다.

 

그럼에도 행복한 글읽기였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는 오히려 아껴 읽으려고 책을 덮고 다른 일을 보기를 몇 차례,

누가 끝까지 읽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책을 덮는 순간엔 다 읽었다는 만족감과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백 년 서사의 중심에서 소설 속 그들과 함께 살아온 것처럼 현실 세계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만큼의 몰입이었다.

소설이라는 허구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역사였거나 동일한 역사가 세상 어딘가에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시대나 배경이 달라지고 그들이 아닌 또 다른 그들이 또 다른 세계에서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시감,

그건 세계가 극찬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이 남겨준 잔영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과 환상, 객관과 주관이 혼란스러울만큼 얽혀있지만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고찰, 인간의 내면과 욕망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묘사와 한 편의 시로도 손색없을만큼 섬세한 표현의 문장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마콘도와 마콘도의 인물들을 벗어나지 못하게하는 강력한 흡입력을 지녔다.

 

왜 수많은 지성인들이 이 책을 추천도서 1위의 반열에 올렸는지, 읽고나서야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글이 글로써 얼마나 많은 역사와 시대와 시대적 상황과 인류의 변화와 삶을 고증할 수 있는지,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수많은 욕망과 욕구들을 끄집어내어 표현할 수 있는지,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의 실재와 고통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이 책이 보여주는 범위는 실로 마술만큼 놀랍다.

 

조금 더 일찍 읽지 못한게 아쉽고,

읽을까 말까 머뭇거린 시간이 아깝고,

눈 아프다 쉽게 덮어버렸던 시간이 아깝고,

강력한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고요같은 이 평안과 행복이 기껍고 좋다.

 

책이 주는 이토록 강렬한 기쁨을 맛본 것이 과연 또 언제 있었는가 싶다.

 

 

 

 

 

"이럴 줄 모르셨나요?" 그가 태연히 중얼거렸다. "세월은 흐르게 마련입니다."

"그렇긴 하지." 우르슬라가 대꾸했다." "하지만 별로 흐르지도 않아."                               - page 372

 

지금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든 현실적인 사실들을 비웃어 넘겨서 가슴 밑바닥에 재만 남았던 그녀는 이렇게 처음 향수의 공격을 받고는 주체할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서 슬픔을 느껴야 할 필요성은 하나의 약점이 되었다. 그녀는 고독 속에서 인간이 되어갔다.       - page 403

 

소설의 죽음과 관련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설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동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page 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