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모나드의 영역 / 쓰쓰이 이스타카

다연바람숲 2017. 2. 7. 13:24

 

 

 

*모나드

세계의 구성 요소로, 모든 존재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실체를 뜻하는 라이프니츠의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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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공간과 시간의 전부이므로 우주에 편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 전부에 존재한다는 말이 되지.

 

소위 신앙심 깊다는 자들은 선량한 자가 불행을 맞닥뜨리면 그것을 자기들의 죄 대신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대책임을 운운하는데, 이 역시 옳지않은 생각이지. 불행은 오로지 그것을 낳은 자들과 사회 때문이며, 대체로 연대책임은 물론이고 애초에 책임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아.상상의 산물이지. 죄니 벌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죄도 벌도 당신들이 좋아서 만들고 좋아서 받고 있는거야.

 

예전에 러시아에서, 신이 여자를 궁휼히 여기사 내려주신 것이 이런 히스테리라는 말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선한 일은 하지 않아. 모두 제풀에 이렇게 된 것뿐이야. 물론 나는 이런 것을 인정해. 현실의 존재이고 참이지. 참은 전부 인정해.

 

토마스 아퀴나스 군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난해한 표현을 했지만 이건 명사가 아니라 오히려 서술에 가까워. 다마스케누스 군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명칭은 고유한 방식으로 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체의 무한한 확장을 보여주는 거라고 말했어. 그러나 무한한 것은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명명할 수 없으며,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존재하는 것'은 신의 이름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어.

 

모든 선은 에이도스적으로 내재하는 선성에 의해 선이라 일컬어져. 작용적 선, 목적적 선, 유형적 선에 의해 나 자신이 에이도스적으로 그 자체가 선인 선성에 의해 선이니까. 즉 나 자신이 선 자체라는 것이지.

 

당신이 사고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 누가 내린 지령인가, 그 정당성은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참으로 열린 질문이지.

 

전쟁도 진보의 한 모습이야. 내친김에 말하자면 퇴보니 퇴화니 퇴행이니 하는 것도 진화의 모습들이지.

 

당신들은 설마 인류의 번영이 이대로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결국은 절멸해. 그것은 확고한 일이야. 모나드에 정해진 일이니까. 그것이 언제인지는 가르쳐줄 수 없지만. 그리고 당신들이 절멸한 후에도 우주는 존속해. 어떤 형태로 존속하는지도 가르쳐줄 수 없어. 당신들이 모나드에 반항하며 모나드를 파괴하려고 할 테니까. 다만 이것만은 말해두지. 당신들의 절멸은 참으로 아름다워. 당신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내 눈에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말이야.

 

여기서 한 가지만 가르쳐줄까. 나나 당신들이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가능세계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이야기 말야. 여기가 단지 소설 속의 세계라고 하면 어떨까.독자가 보자면 나나 당신들이 있는 이 세계는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겠지. 당신들도 알잖아 여기가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을.

 

역으로 말하면,우리 세계에서 보자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세계야말로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

 

"GOD,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대체 뭔가요?"

"너한테는 말해버릴까.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가는 그걸 방패로 삼으려고 할 테니까.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야. 내가 창조한 것 전부를 사랑하기 위해서. 당연하지.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잖아. 이걸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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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과 과격한 블랙유머를 보여주며 쓰쓰이다움이라는 장르까지 만들어낸 일본의 대표적인 sf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근작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에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자의 한쪽 팔, 사건으로 소설이 시작을 해서 일본의 흔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토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간의 몸으로 빙의한 신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 시간과 공간에 편재하는 존재로서의 존재, 신의 이야기이다.

 

신은 노교수의 몸을 빌어 말하지만, 어쩌면 이 소설은 신의 입을 빌어 작가의 우주관과 세계관과 철학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알려진 종교관, 세계관, 인류에 대한 메시지들이 신의 말을 통해 이야기 된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인류와 세계의 비밀들이 신의 입을 통해 생중계 된다. 소설 링, 소설 1Q84 속에도 등장했던 가능세계가 등장한다. 누구나 상상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이렇게 고도의 신학, 철학론을 듬뿍 버무려 신과 가능세계를 가능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역시 노령의 작가다운 노련함이 있다.

 

"나의 최고의 걸작이며 아마도 마지막 장편일 것이다."

 

작가 생애의 최고의 걸작이라 뽑은만큼 읽을 수록 그 진가가 더해지는 소설이다. 소설인데 그 이상의 여운이 있다. 한 번으로는 안된다. 첫 번째 독서는 흥미로운 소설일 것이나 그 이후는 철학서가 될 것이다.

 

모나드의 영역을 주관하는 신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데는 역시 한계가 있으므로, 설명은 요기까지.

 

올 해 한번쯤 읽어 볼 책으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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