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버린 것과 잃은 것의 감정

다연바람숲 2017. 8. 2. 18:06

 

 

 

 

낡고 헤진 운동화를 버렸다.

오래되고 볼품없긴해도 발에 잘맞고 편해서 즐겨 신던 것이었는데

빨면 빨수록 색은 바래고 헤진 곳은 도드라지고 무엇보다 이젠 헐거워져서 발에 맞지를 않는다.

그나마 발에 맞을 때는 그럭저럭 볼품없는 것도 감수할만큼 편안함이 주는 애착이 컸던 것인데

막상 헐거워져 발에 맞지않으니 신기에는 불편하고 버리자니 아까운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을

오늘은 큰 맘 먹고 과감하게 쓰레기 봉투에 넣어버렸다.

 

눈에 보일 때는 신지 않더라도 한 번씩 습관처럼 손이 가더니 막상 쓸모를 다한 것이라고 버리고나니

그 낡은 운동화에 주었던 애착들이 오히려 신기한 걸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구나 싶기도 하다.

 

반지를 잃어버렸다.

중지 하나, 약지 하나 나란히 왼손에 끼고 나온 반지가 오후에 보니 약지의 반지만 남아있다.

조금 헐겁긴 했어도 그리 쉽게 빠져나갈 반지가 아닌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빠져나가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

손님 접대한 찻잔들을 닦느라 몇 번의 설겆이를 했고, 샵앞의 화분들에 물을 주고 떡잎들을 살피고 손질을 했고,

배송 보낼 택배를 포장하고 보내느라 조금 분주하였고, 외에는 손을 쓰거나 딱히 반지가 빠져나갈 일을 하지않았는데

오고 간 실내의 공간과 동선을 꼼꼼히 다 살펴보아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조차 없다.

 

그닥 값이 비싼 것도 아니고, 그리 특별히 예쁘다할 것도 아니지만

반지 하나가 허전할 때 약지의 것과 나란히 끼기엔 중지에 맞는 것이 그 것 뿐이어서

약지의 반지가 바뀌어도 묵묵히 문신처럼 중심을 지키던 반지였는데 잃었다 싶으니 허전한 마음이 앞선다.

그저 작은 하나의 반지일 뿐인데, 그렇다고 패물이니 금은보석이니와는 거리가 먼 장신구일 뿐인데,

사람이 워낙 촌스럽고 소박하다보니 몸에 걸치는 물건들에 그닥 관심이나 욕심이 있는 편은 아닌데,

멋보다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왼손에 반지가 없으면 불안해지는 트라우마 때문에 악착같이 부적처럼 끼는 것인데

멀쩡히 내게 있었고 손가락에 있던 것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으니 허전하고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내 것이었고, 오래 나와 함께 했던 것들이고, 집착까진 아녀도 같은 애정을 주었던 것들인데

쓸모를 다해 내 스스로 버린 것과 아직 있어야할 때 허락없이 나를 떠나간 것에 대하여 다른 감정이 남는다.

 

묻나니

나는 누군가에게 운동화같은 존재인가? 반지같은 존재인가?

묻나니

당신은 누군가에게 반지같은 존재인가? 운동화같은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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