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교를 지나며
그 저녁,
장미교 옆을 지날 때
장미교의 신호등에 갇혔을 때
장미교의 커다란 표지판 위로 번지던
그때의 하늘은 막 피고 지는 장밋빛
장미가 없는 장미교를 따라 놓인 전선 위엔
누군가 흩뿌린 붓의 먹물 자국 같은 점점 까치떼
길고 길었던 하루의 단 몇 초가
처음 멈춰 선 낯선 도시의 신호등 앞에서
셔터도 없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던 때
그때 라디오에선 아름다운 날들이 흘러나오고
제목만 아름다운 날들뿐인 노래가 흘러나오고
미안한 맘 들곤했었지 막 흘러나오는 노랫말에
나는 그 순간, 그 짧은 순간 당신을 떠올렸던가
수많은 방지턱을 과속으로 넘으며 질주하던 때
덜컹거리며 흔들거리며 우리가 향했던 길의 하늘도
그때 장빗빛이었던가 온통 외등 정지신호뿐이던 그 길
막다른 길 끝에서 등을 돌릴 때 나는 미안하단 말을 했던가
멀고 먼 길을 돌아와 다시 물어도 절벽처럼 가파른 마음일 때
누군가 봉인해제를 알리듯 경적을 울리고 떠밀리듯
장미교 너머 장밋빛 하늘을 향해 달려가던 그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