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밥을 먹다

다연바람숲 2017. 3. 15. 18:22

 

 

 

밥을 먹다

 

 

헤어진 남자와 밥을 먹는다

마음 준 적 없으니 만났다 할 수 없고

만난 적 없으니 헤어졌다 할 수도 없지만

밥이나 먹자고 만난 남자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경계 없이 놓인 밑반찬을 사이에 두고

김치 뼈찜 하나

고등어구이 하나

 

갈라진 메뉴만큼이나 서먹한 밥상을 앞에 두고

한 사람은 뼈를 바르고 한 사람은 가시를 바른다

 

누군가는 발라내도 발라내도

뼈 속에 살을 감춘 등뼈처럼 속을 다 내 준 적이 없을 것이고

누군가는 발라내도 발라내도

살 속에 가시를 감춘 생선처럼 버석거렸을 것이지만

삶에 그러하였듯 서로의 메뉴를 간섭하지 않는다

 

간간히 만나야 할 이유들이 생각났지만

번번이 만나지 말아야 할 변명들이 생겨났고

간간히 풍문처럼 안부가 당도했지만

번번이 재발하는 이명처럼 귀가 아팠다

 

잊을만하면 밥이나 한 번 먹자가

연례행사처럼 꼬리를 물어온 것이 몇 해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닌 것에도 익숙해진 사람과

김치 뼈찜 하나 고등어구이 하나

또 마지막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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