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풀꽃들>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이것은 비밀
풀꽃 3
기죽지말고 살아봐
꽃 피어봐
참 좋아
#
재작년, 커다란 덩치만 믿고 샵 밖에 둔 채 겨울을 나게했던 남천이 작년 봄 그나마 달고있던 잎들을 모두 떨구더니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도통 새잎을 내지않았더랬지요. 죽었는가 작은 가지를 꺽어보면 분명 가지에 물을 머금은 살아있는 나무인데 재작년 남천 곁에 두고 키웠던 이름도 모를 풀들이 남천의 커다란 화분 위로 날아들어 뿌리내리고 번지고 꽃을 피우도록 남천은 겨울을 심하게 지낸 몸살을 앓는지 몇몇 계절 그저 침묵 뿐이었지요.
그러던 것이 다른 집의 남천들이 빨갛게 단풍 들거나 신기한 빨간 열매를 맺기 시작할 무렵 여름도 끝자락에, 하나 둘 잎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불쑥 거짓말처럼 푸른 옛 모습을 되찾았더랬지요. 다시 살아서 푸른 잎을 보여준 남천의 생명도 기특하고 고마웠지만 잎도 없는 나무에 꼬박꼬박 물을 주다보면 죽은 나무라고, 포기하라는 사람들의 핀잔에도 묵묵히 물을 주고 바라봐주고 기다려 온 나도 대견해지고 보람도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작년 겨울엔 찬바람이 불자마자 냉큼 햇볕이 잘드는 샵의 창가에 남천을 잘 들여놓았던 것인데, 겨우내 푸르게 간혹 빨간 단풍도 보이면서 잘 자라주는 그것이 그냥 기특하고 어여쁘기만 했던 것인데, 그 화분에 더부살이처럼 자라는 잡풀조차 겨울 초록빛이 싱그러워 자라도록 그냥 두었던 것인데...이런.. 거기 먼저 봄이 오고 있었네요.
보리빛 앙증맞은 꽃도 피고 냉이꽃 같은 하얀 꽃도 피고, 그 작은 것들이 숨어 피는 동안 햇살처럼 봄이 번져오고 있던 것이겠지요.
화분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하는 모습도 신기하고 아름답지만,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아니고 어쩌다 뿌리내린 남의 영토에서 보란 듯이 꽃을 피우는 저 작고 작은 것들의 봄날 또한 왜 이리 환한지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네가 그렇다. 너도 그렇다.
어린 꽃빛에 속삭여주는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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