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가난한 색. 그래서 그 위에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싶은 색. 조금 모자란 색. 그래서 많이 배울 수 있는 색. 넘어진 일이 자꾸 머리에 남아서 귓가가 화끈해지듯. 실수한 일들이 그 다음 날 더 선명해지듯. 자꾸 마음에 남는 색.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가슴에 더 오래 남는다. 지워도 닦아도 더 선명해져서 창피하단 생각마저 드니까.
마음에 따라 두꺼울 수도, 얇을 수도 있는 색이다. 투명해 보일 수도 탁해 보일 수도 있는 색이다. 기분에 따라 그림이 많게 보일 수도, 글씨가 많게 보일 수도 있는 책과 같은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일은 보이지 않고, 내가 필요로 하는 색만 보인다. 우리가 분홍색을 알아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걸 원하고 있기 때문에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눈에 들어와 향기가 되고 기운이 된다. 누구나 살고 있지만 누구나 살아 있다고 느끼기 어려운 것처럼.
잃어버린 것이 많으면서도 잊은 것들이 많으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가지지 않던가.
이병률 / 분홍.. 색의 여행 중에서
#
내게 보라색은 눈물의 색이다. 어디서 어떻게 눈물 한 방울 떨구어져 얼룩이 남았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보라는 슬픔의 색이다.
민트는 명랑의 색, 입안에 번지는 박하향 같은 색, 파랑에 부드러운 밀크를 듬뿍 얹은 것 같은 색.
빨강은 아무리 감추어 놓아도 저 혼자 드러나는 사랑같은 색이다. 어둡고 칙칙한 곳에 툭 던져놓아도 이것저것 잡다한 감정 속에 섞어놓아도 도무지 겸손해지지않는 색, 우울한 날의 짙은 립스틱같은 색, 빨강은 도발적인 여인의 눈빛을 닮았다.
오늘의 나를 표현하는 색,
그것이 어떤 날은 블루였다가 초록이었다가 분홍이었다가 회색등으로 변하고 바뀌는 동안 그렇게 나의 공간에 놓이는 것들의 위치와 크기와 모습들이 변해가고
어느 날 가만 둘러보면 그 색깔의 공간들이 나를 만지고 위로하며 왔음을. 알게 되는 것.
'오래된 시간 > 응용 - How?' 카테고리의 다른 글
‘650년 된 이야기’…40년이 지나 완독하다 (0) | 2016.08.27 |
---|---|
디자인 책을 권합니다 (0) | 2016.08.26 |
액자가 있는 풍경 (0) | 2016.08.09 |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 (0) | 2016.02.04 |
인테리어디자이너 김혜정의 친구처럼 편안한 집 (0) | 201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