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꽃밭에서 쓴 편지

다연바람숲 2016. 6. 10. 17:44

 

 

 

 

 

 

 

 

 

 

내게 와서 내 뜰에 피는 꽃들은 모두가 선물여요.

모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새로운 인연에 정착하듯 내게 왔어요.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이름조차 낯설어 들었지만 잊어버린 이름들도 있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 와서 꽃이되어야할 꽃들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처음 듣는 짧지않은 영문의 이름들을 메모없이 기억하기에 이미 제 나이는 건망증과 치매일까? 사이를 오락가락할 만큼이 되었어요.

 

그럴지라도 아무려면 어떤가요?

보라빛 꽃은 보라빛 꽃으로 어여쁘고, 다육이처럼 생겼지만 채송화같은 꽃을 피우는 저 납작이도 그 나름으로 어여쁘고, 흔하디 흔한 자주빛 대신에 연분홍꽃으로 온, 흔하지만 내게 귀하게 온 저 분홍꽃도 어여쁘고, 그 이름 또박또박 불러주지 못하지만 편견없이 내 뜰의 꽃이고 내 눈 속의 꽃이고 내 마음의 꽃들인걸요.

 

꽃들은 정말 많은 걸 잊게해주고 또 많은걸 떠올리게 해줘요.

슬플 때 바라보는 꽃은 슬픔이면서 위로이고, 즐거울 때 바라보는 꽃은 웃음이면서 기쁨이고, 누군가 미워질 때 바라보는 꽃은 불편한 내 마음이면서 거울이 되기도 해요.

 

꽃으로 기억할 사람은 없지만, 아니 누군가를 떠올릴만한 꽃이 내 뜰에는 없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꽃에 물을 주거나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엔 오로지 아름다운 것들만이 존재한다고 믿게되는걸요.

 

내게 꽃을 전해 준 누군가의 마음과 손길이 사랑이고, 내가 주는 눈길과 관심만큼 내게 하루하루 새로운 꽃빛을 보여주는 꽃들이 또한 선물인걸요.

 

세상의 그리운 이름들에게 저마다 그에 어울리는 꽃빛을 이름해두고 불러주면, 가늠할 수 없었던 세상의 거리가 한뼘이 되고 기억이나 추억이거나 저녁놀 물드는 하늘처럼 나름나름의 꽃빛에 하르르 젖어들기도 하는걸요.

 

색색의 무수한 종류의 꽃이름을 불러주며 꽃밭을 가꾸는 이들에겐 비록 화분 몇 개의 초란한 뜰이겠지만, 그 화분 몇개가 주는 즐거움을 무한 행복으로 색칠할 줄 아는 나란 사람을 무어라 불러볼까요?

 

아!

어쩌나

올망졸망 작은 제비꽃 같은 꽃을 한아름 품은 저 보라빛꽃을 내 맘이라 불러주고싶은데, 나는 정작 그 이름을 몰라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대가 떠난 뒤 나는 꽃들과 친해졌답니다. 그대가 좋아했던 꽃들. 그 꽃들과 사귀며 하루하루 새 꿈을 개발해내고 있답니다."

 

잘 지내지요?

하루하루 개발해내는 새꿈에 꽃들의 이름을 붙여주며

나도 잘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