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내 옆에 있는 사람 / 이병률

다연바람숲 2015. 7. 21. 17:05

 

 

 

 

 

- 좋은 눈빛에 흔들렸으면 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쉬지않는 눈빛과 마주쳤으면 한다. 그것이 다행한 일이다.

 

- 사랑이 여행과 닮은 또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것인지를 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고 우리가 관여할 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살아온 날들 중에, 좋은 날은 얼마나 많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감히 그 힘으로 살아도 될 그런 날들이, 그 힘으로 더 좋은 것들을 자꾸 부르는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겁니다.

 

- 비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눈물이라는 감정만 사용했으면 싶다. 상처라는 말에 끌려다니기보다는 무시라는 감정으로 버텨냈으면 한다.

 

- 그저 적당히 조금 비어 있는 상태로는 안 된다. 지금의 안정으로부터 더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뻗어나가는 것도 있다.

 

-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둘 수도 있음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랑의 이사를 떠나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그가 없는 빈집 앞을 서성거려보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 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 사랑하게 되거든.

 

- 사람은 그 자체로 기적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마음 안에 그 한 사람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더 기적이지요.

 

- 가능하면 사람 안에서, 사람 틈에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지요. 선뜻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지요. 사랑은 사람보다 훨씬 불완전하니까요. 아, 불완전한 것으로도 모자라 안전하지 않기까지 하네요 사랑은.

 

-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했습니까. 무엇으로 얼굴이 붉어졌습니까. 그런데도 그 좋아했던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지요.

 

- 세상 모든 사랑의 속성은 결국엔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는 거라고. 모든 사랑의 끝에서는 자기 자신만 용서하게 된다고. 그런 방어기제조차 없으면 다리가 꺽이고 마음이 잘려나간다고.

엄마는 하지 못했지만 너는 사랑을 하라고, 어떻게든 사랑이 나를 밟고 지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며 모르게 될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엉킨 선도 풀어나갈 힘이 없는 거라고.

 

- 내가 한 것이 정녕 사랑인가를 묻는 것이라면 그만두게. 내 대답으로 인해 내가 따라 걸었던 빛들이, 신었던 신발들이, 그리고 그 물컹한 푸른빛들이 자네 상식 안으로 이해되길 원치 않네. 사랑은 불가능의 결정(結晶)인 상태의 것이라 모두가 쩔쩔매는 것이고 그토록 뼈저린 것 아니겠는가. 많이 사랑한 죄였을 것이네. 죄인 줄 알면서도 사랑한 병(病)이 있을 것이네.

 

-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그 말은 "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라는 말의 다른 말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러는 것은, 사랑은 떠올리지 말아야 할 불안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다. 좋아하는데 손잡을 수 없고 가까이할 수 없는 난감함의 이유는 명치까지 불안이 차올라 있어서다.

 

- 우리는 사랑에게 엄청난 많은 것을 배웠으므로 그만큼의 빚을 지고 산다. 그것도 갚을 수 없는 아주아주 큰 빚을.

 

-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계절이 도착하고 계절이 떠나기도 한다. 나에게는 가을이 왔는데 당신은 봄을 벗어나는 중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사랑이 시작됐는데 당신은 이미 사랑을 끝내버린 것처럼.

그러니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를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이병률 여행산문집 <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