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하늘 물빛 정원, 아름다운 산책

다연바람숲 2015. 5. 26. 17:09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비록 간단한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기는 오늘날 우리네 사회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놓는 온갖 근심걱정들을 잠시 멈추게 해준다. 두 발로 걷다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고 지워져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대기 속에는 바람에 울리는 자명금 같은 미묘한 음악이 가득하다. 허공의 저 높은 곳을 덮고 있는 아득한 궁륭 밑에서는 선율이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울린다.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들의 귓가로 와서 스러지는 음악이다. 마치 대자연에도 어떤 성격이 있고 지능이 있다는 듯 소리 하나하나가 깊은 명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 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들을 통해서 내 힘과 정진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예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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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참 좋습니다.

바람이 건드리는 나뭇잎의 소리도 다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오월, 하늘 물빛 정원의 물빛은 하늘빛보다 산빛이 더 깊습니다.

연휴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두 풍경을 가리지않고 지나갑니다.

숲도, 호수도, 사람도 모두 그 풍경 속에서 풍경처럼 고요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호수를 에둘러 난 길들을 찾아 걸었습니다. 오랜만의 여유로운 산책입니다.

삶과 생활과 쉬이 벗어날 수 없었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처럼, 산책은 내가 오래 잊고있었던 내 안의 소리를 듣게합니다.

무모하고 가치없는 근심들의 무게들을 덜어줍니다. 헝클어져 수습할 길 없던 마음의 실타래를 고요하게 정돈해줍니다.

 

말없이 앞서거나, 말없이 뒤를 지켜주며 걷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삶이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아니라 늘 이만큼의 거리를 지키며 함께 걷는 일이라는 걸,

내 느린 걸음에 맞추어 속도를 늦추거나 앞서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어 기다려주고,

앞 서 걸을 땐 낯선 길이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이끌어주고,

묵묵히 뒤를 따라올 때는 내가 미처 보지못하는 삶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걸.

 

이 생애. . .

이 아름다운 소풍 길에서 당신을 만났으니 되었습니다.

더러 비바람 맞는 날들이 있었으나 이 아름다운 소풍길의 산책도 당신과 함께여서 괜찮습니다.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은 당신과 함께하는 산책입니다.

 

지어미와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세상의 감사한 선물이라하는 지아비에게,

함께하며 함께 맞이한 29번째 지아비 생일에 이런 마음만 선물처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