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네펜데스, 개똥 철학

다연바람숲 2015. 5. 26. 13:42

 

 

 

 

오늘은 다연의 이웃에 있는 꽃나무에서 네펜데스(Nepenthes) 화분 하나를 샀어요.

네펜데스는 포충낭(벌레잡이통)의 꿀샘에서 향긋한 냄새를 발산하여 곤충을 유인, 포충낭 안의 고여있는 소화액으로 벌레를 잡는 식물이래요.

쉽게 말하면 달콤한 향기로 곤충을 유인해서 잡아먹는 식충식물이란 거지요.

 

다연의 뒷문을 열면 아주 작은 공간이 있어요.

그곳에 각기 모양과 크기가 다른 항아리 여러 개를 엎어놓고 꽃이 피지않는 초록 식물들이랑 봄내 꽃을 피워주고 이제 시들해지는 화분들을 올려 놓았어요.

 

뒷집 할아버지의 너른 텃밭을 가로막는 철제 담장에는 심심하지않게 작은 아이비를 걸어놓았고, 좁은 바닥이지만 바닥의 보도블럭을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들은 꽃이거나 풀이거나 꽃이 피거나 지거나 키가 크거나 휘거나 자라는대로 그냥 두었어요.

이른 봄에는 하얀 민들레 노란 민들레가 낮게 피고 지더니, 보도블럭 틈새마다 낮게 번져가던 질경이가 이제 꽃대를 세우고, 그 사이사이 껑충 키다리처럼 꽃대를 세운 씀바귀 노란 꽃들은 이제 꽃씨를 퍼뜨리는 중여요. 건물과 담장 사이 좁은 골목을 휘어지게 피어나던 애기똥풀은 그 샛노란 꽃빛을 지워가고, 불쑥불쑥 볼 때마다 키가 자란 망초대가 꽃대 위에 마악 하얀 꽃을 피우고 있어요.

 

그저 잡초들이라도 자라는 걸 보면 그 나름의 순서가 있고 질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하루 키가 커지는 망초는 분명 그 씨앗, 터를 잡아내리지는 않았을 것인데 담장 아래거나 벽 가까이 몸을 기대고 자라요.

서로서로 부대껴가며 의지하고 자랄 곳이 아닌 걸 알아 미리 기대서서 자랄 곳을 찾아 뿌리를 내린 것 처럼요.

사람의 발길이 잦은 곳엔 질경이가 질기게 자라고 스쳐서 꽃잎 다칠만한 꽃들은 또 숨어서 자라고 꽃을 피워요.

 

들쑥날쑥 제 각각의 항아리들과 꽃이 피지않는 제 각각의 초록이들과 꽃 피던 시절에는 샵앞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다 이제는 뒷마당 신세가 된 화초들과 담장 아래와 보도블럭 사이 제멋대로 자라난 잡초가 야생화가 되어 뒤죽박죽 피어있는 뒤란은 내게는 한없이 자연스럽고 소박한 꽃밭이며 뜰이 되겠지만 성격 까칠하고 깔끔한 분들이 보기에 어쩌면 폐가의 마당을 보는 것처럼 어수선하고 정신 사나울 수도 있을거여요.

 

저기. . . 저런 건 뽑아버리지 왜? 지저분하지않아?

저건 풀이잖아. . . 저런 건 한없이 번질거야. . .

그 어떤 말들에도 아랑곳없이 꿋꿋이 방치해 온 셈이니 더러 방치도 자연스러움 그대로가 되지는 않을까 제 마음은 그런거지요.

 

하지만 화초들이 있는 곳이다보니 매일 물을 주어야하고, 잡풀들이 자꾸 늘어나다보니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습한 구석에서 생겨난 모기들이 한낮에도 뒷문을 열어놓으면 샵의 안에까지 무작정 쳐들어오기 일쑤이니요. 근본적으로 뒤란을 완벽하게 정리하지않는한 뒤란의 잡초들을 뽑아 말끔히 치운다고 크게 달라질 일이 아니고보면 저도 소극적인 대처는 해야할 것 같아서 궁리한 것이 네펜데스를 들여놓는 일이었어요.

 

네펜데스를 보는 순간, 벌레를 잡아먹는 식물이라. . . 흥미로운 호기심도 생기는데다 그것이 조금 혐오스러운 모양새일지라도 꽃이거나 포충낭이거나 볼거리가 하나 더 느는데다 성가신 해충까지 잡아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소극적이고 게으른 방법인가요? 그럼에도 뭐랄까 전쟁을 치루면서 내 손에 피는 안묻히는 그런 기분이니 한걸음 물러나 두고보겠다는 관조의 여유까지 생기는 거지요.

 

더러 사람 사는 일에도 그럴 때가 있지요.

그 말을 하면 뻔히 미움받을 거 알아도 정곡을 찌르는 말, 모진 말, 나쁜 말을 해야만할 때. . .

할까말까 망설이는 중에 곁에 있는 누군가가 내가 하고싶은 말을 짧게라도 대신 해줄 때의 안도감과 통쾌함. . .

저 작은 네펜데스 화분이 얼마나 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를 대신해 전장에 나서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느껴지는 이 편안함만으로도 사사로이 흘러가는 하루가 또 더없이 특별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이지요.

 

사는 일이거나 행복이거나 뭐 그리 특별한 일 있을까요?

더러 게으름에서 오는 이런 안이한 발상도 궁금하게 흘러가면 그리하여 기쁘면 그도 행복인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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