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슬픔', 석판화, 38.5×29㎝, 1882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슬픔이 아름답지요? 그림 속 여인의 슬픔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그릴 수 없는 그림, 고흐의 '슬픔'입니다. 그러고 보니 기쁨이나 행복만 아름다운 게 아닌 모양입니다.
저 초라한 실루엣이 왜 이렇게 사무칠까요? 저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울컥, 했습니다. 생의 버거움을 고스란히 짊어진 그녀의 실루엣은 행복했던 순간들이 없었던, 행복을 모르는 사람의 포즈 같았으니까요.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묻고 있는 저 여자, 울고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지지해주는 이 없이 살아낸 그악한 세월이 버거워 아무 것도 보지 않으려 하는 저 여자는 고흐가 사랑한 여자 시엔(Sien)입니다. 도대체 의지를 내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 불행하기만 했던 청년 고흐가 사랑했던 여자는 불행한 남자가 알아본 여자답게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얽히고 설킨 인연,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인연을, 불행한 사람을 불행한 인연을 부릅니다.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있어.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해주는 힘 아니겠니? 그녀의 이름은 시엔이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는 진솔하기만 한데, 저 착한 남자의 따뜻한 사랑의 힘으로 슬픔에 사로잡힌 여인이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볼 수 있을까요?
가까이 보니 여자의 배가 불렀습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엄마의 슬픈 몸에 기대 새로운 생을 준비하는 악착 같은 생명의 힘이 저 여인에게 힘일까요, 짐일까요? 저 여인 시엔은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고단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미 아이가 있는 데다 또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아이를 품고 차마 울 수도 없는 여인, 그 여인은 19세기 말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에서 죄인도 아닌데 죄인으로,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존재감 없는 여인이었던 거지요.
그런 여인이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밑바닥 세상에서 가혹한 운명의 매를 맞으며 황폐해져만 가다가 고흐를 만난 겁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슬픔의 선을 아는 섬세한 고흐를. 슬픔은 인간을 내향적으로 만드는 가장 적합한 정서 아닌가요?
고흐를 만나 시엔은 슬프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던 팍팍하기만 했던 삶 속에서 비로소 슬픔을 드러낼 수 있었겠지요. 선택의 여지없이 끌려 다니기만 했던 서러운 세월을 그제야 토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처음으로 사랑받는 여인이 되어. 처음으로 자기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햇빛 환한 창가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자 나는 행복했다.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 있을 때 깊은 감동을 느낀다."
그 보잘것없는 여인을 사랑하다니,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사랑으로 감동받아본 적이 없는 메마른 인생입니다. 슬픔이 슬픔을 사랑하는 건 연민이라고 부르는 건 적어도 고흐에게는 모독이니까요.
슬픔이 매파가 되어 연인으로 행복했던 사랑의 시간은, 그러나 길지 않았습니다. 형 고흐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동생 테오가 시엔을 너무 싫어했습니다. 가난하고 거칠게 살아왔으나 체념이 빠른 착한 여인이 격렬한 테오의 결혼반대를 당당하게 버텨내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고흐는 시엔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고흐 인생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풀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결과적으로 고흐는 그 이후 더 깊은 슬픔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것은 인생, 그것은 생의 비밀이라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려고 고흐는 그토록 슬프고 그토록 불행했나 봅니다. 저 그림 '슬픔'을 시작으로 고흐의 그림들은 모두 자신의 생을 희생 제물로 내주고 얻은 보물 같습니다.
"그래, 나의 그림! 그것을 위해 나는 목숨을 걸었고, 나의 이성은 반쯤 괴멸했다, 그래도 좋다!"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들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행 속에서 오묘하고도 감미로운 생의 비밀과 만나고 있으니까요.
<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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