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감성 - 통하는문

모스크바에서의 이혼 / 이브 아널드

다연바람숲 2013. 11. 8. 11:51

 

이브 아널드, <모스크바에서의 이혼> , 1966년

 

-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 -

 

극적인 면은 훨씬 덜하지만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세속적이고 현대적인 형태의 지옥을 생각해보자.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지옥이란 보다 나은 자아로 거듭나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혼 수속 중인 러시아 부부를 담은 이브 아널드의 사진은 일상적이고 무신론적인 형태의 지옥을 보여주며, 고통이 어디에나 산재해 있음을 한층 확실하게 보여준다. 도덕적 개념 ('친절과 자비를 실천하라' '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남을 탓하지 말라' 등등) 을 예술로 표현할 때 부딪히는 실질적인 어려움은 그 개념들이 충격적이거나 특이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빤해 보인다는 데 있다. 바로 그 빤빤한 온당함이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소멸시킨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좋은 배우자가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수천 번 듣지만, 그런 명령이 기계적으로 반복될 땐 그 의미가 연기처럼 새어나간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과제는, 균형잡힌 좋은 삶을 영위하는 법에 대해 피곤할 정도로 익숙하지만 중요한 비판적 기준이 되는 개념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우리의 닫힌 눈을 비집어 여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지옥 같은 상황을 계속 생생하게 표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시도는 쉽사리 정형화된 공포를 낳고 누구도 감동시키지 못한 채 끝나버린다. 아널드 같은 능숙한 예술가는, 우리가 나 자신과 타인을 실망시킬 때 무엇이 진정으로 위험해지는지 상기시키는 이미지를 통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침실이나 부엌에 걸어놓고 싶을지도 모른다. 화가 나서 " 이제 됐어. 빌어먹을, 이제 그만 이혼하자. 법원에서 봐" 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 그 그림을 볼 수 있는 딱 적절한 장소 말이다.

 

알랭드 보통 <영혼의 미술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