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감성 - 통하는문

양치기의 그림자를 더듬어가는 다부타데스 / 장바티스트 르노

다연바람숲 2013. 11. 28. 19:26

 

 

장바티스트 르노 < 미술의 기원: 양치기의 그림자를 더듬어가는 다부타데스> , 1786년

 

 

 

- 오늘 밤 당신의 모습을 영원히 잊지않을거에요.

 

우리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데 서툴다.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정보를 잘 잊어버린다.

 

글쓰기는 분명 망각의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고. 미술은 그다음으로 중요한 방편이다. 그림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 하나가 정확히 이 동기를 설명해준다. 로마 역사가 대 폴리니우스가 전해주었고, 18~19세기 유럽 미술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다. 사랑에 깊이 빠진 젊은 남녀가 헤어질 순간에 이르자, 아쉬운 마음에 여자는 연인의 그림자 윤곽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여자는 기억을 잃을까 두려워 까맣게 태운 지팡이 끝으로 무덤 벽면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 선을 따라 그린다. 르노의 장면 묘사는 특히나 애절하다. 부드러운 저녁 하늘은 연인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음을 암시한다. 양치기의 전통적 상징인 소박한 피리는 남자의 손에 무심하게 쥐어있는 반면, 왼쪽에서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개는 보는 이에게 정절과 헌신을 일깨운다. 여자는 남자가 떠났을 때 자신의 마음속에 남자를 더 선명하고 더 강하게 붙잡아두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코의 정확한 모양, 곱슬거리는 머릿결, 둥근 턱선과 치켜올라간 어깨는 남자가 수 마일 떨어진 계곡에서 가축에 신경쓰는 동안에도 여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중략>

 

우리가 잊을까봐 걱정하는 대상은 대체로 아주 구체적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장면의 무작위적인 면이 아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기억하길 원하고, 그래서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화가들은 무엇을 기념해야 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할지 적절하게 선택한 듯 보이는 사람들이다. 르노의 그림에서 여자가 마음에 담고 싶어하는 것은 단지 곧 떠날 연인의 전체적인 형상이 아니다. 그녀는 더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어떤 것, 즉 그의 개성과 본질을 원한다. 이 과제를 해내려면 예술작품은 일정 수준의 정교함에 도달해야 한다. 하나의 장면, 사람, 장소에는 기록할 수 없는 면이 아주 많지만 , 중요도는 제각기 다르다. 우리가 예를 들어 가족사진을 포함해 어떤 예술작품을 성공작이라고 말할 때, 그 작품은 가치있지만 붙잡아두기 어려운 요소들을 전경에 내놓는다. 좋은 작품은 중요한 핵심을 못으로 박아 강조하는 반면, 나쁜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명백히 일깨운다 해도 본질이 아디론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런 작품은 공허한 기념품이다.

 

 

알랭드 보통 - < 영혼의 미술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