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10월,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다연바람숲 2014. 10. 29. 14:23

 

 

 

 

 

 

 

10 월 / 오세영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 낮

 화상입은 잎새들도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화여 네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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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누군가가 보내온 강원도 양양 오색약수의 풍경 사진입니다.

가을 산행을 떠났다고, 아직은 단풍보러 나서본 일 없는 이 사람에게 선물처럼 보내 온 풍경들인데,

정작 깊고 곱고 아름다운 풍경들은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사람이 주인공이어서 두 장의 사진만을 자랑합니다.

누군가는 강원도 오서산의 단풍을 보내오고, 누군가는 아직 푸릇한 제주의 가을을 전해오고

누군가는 뜨락의 가을꽃이 곱다고 담아보내고, 내가 가보지못한 곳들의 가을을 엽서처럼 받는 일도 행복입니다.

 

단풍의 남하하는 속도가 사람의 걸음걸이와 같다하니 저기 오색약수의 단풍물결, 지금쯤은 이곳을 훌쩍 지나갔겠습니다.

가장 더디게 단풍드는 길가의 플라타나스도 이제 서서히 잎이 바래고 점점 더 바람에 약해집니다.

골목길 담장을 넘어 온 감나무잎은 붉고, 길가의 은행나무 가로수 노랗게 물들어 이제 정말 가을인 줄 알겠습니다.

곱게 단풍 든 잎들, 우수수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낙엽으로 쌓여 이제 정말 이별의 계절임을 알겠습니다.

 

가을만큼 이별하기에 좋은 계절도 없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키워 온 생의 이유들을 아낌없이 버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그리하여 비로소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을의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이 진실로 하나씩 성숙해 가는 일임을 또한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끝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었고 잃는 것이 많을수록 채워야할 이유도 많았습니다.

그것이 사람이거나 사랑이거나 열정이거나, 이젠 그 어떤 이별도 아름다운 이별로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문태준 시인의 바닥에 나오는 싯귀처럼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창 너머 잎이 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보면서, 가을이 전하는 말과, 시월이 전하는 메시지와, 단풍과 낙엽이 전해주는 쪽지를 받아 읽습니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 . 고요하고 평안해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