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충청도 말에 대하여 / 한창훈 (소설가)

다연바람숲 2014. 9. 30. 18:29

 

(비참하고 슬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몇몇 사람들 사이에는 5, 6공 시절, 운동권 대학생 잡아들여 취조 고문을 하던정주이의 사적인 증언이 떠돌았다. 그자의 말에 의하면 삼남(경상 전라 충청)의 특성이 취조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먼저 경상도 학생. 잡아 족치면 한번에 다 분단다. 그 다음 전라도 학생. 족친 만큼만 분단다. 다음날 조금 더 조져 보면 그만큼만 더 나온단다. 가장 독한 애들은 바로 충청도. 아무리 족쳐도  

 

“물류. 그게 아뉴.”

 

소리만 한단다. 빨리 안 불어? 아무리 때리고 거꾸로 매달아도, 뭔 소리를 하는지 당췌 물르겄슈, 잘못 아신규, 소리만 해서 결국 내보내고 말았단다. 뒷날 알고 보니 내보낸 학생이 그들이 찾고 있던 사람이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충청도 출신 어느 시인 왈.

 

“독해서 그러기버덤은 갸도 말을 하려고 했을 겨. 막 실토하려고 하는데도 말 안한다고 두들겼을 겨. 그러니 원제 말을 햐.”

 

삼남의 기질 차이는 말투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경상도 말은 왜 그렇게 짧고 공격적일까. 답은 산이 높고 날카로워서. 어떤 방문자라도 불쑥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미 눈앞이라 재빠르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서.

 

전라도는 리듬을 타야 한다. 산이 낮지는 않지만 구릉이 많고 완만하여 그렇다고 본다. 그럼 충청도는? 평야가 넓은 곳이다. 모르는 이가 저만치에서 나타나면 궁리하기 시작한다. 삼국시대부터 그랬다. 침범이 잦았던 탓에 저것들이 고구려일까, 신라일까, 우리 백제일까, 정보가 모아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한다. 그러기에 직설이 없다.

 

충청도 말이 느린 것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답 없이 가만히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직설이 없다 보니 비유가 발달했다.  

 

충청도를 배경으로 비유의 언어를 가장 뛰어나게 구사한 분이 돌아가신 명천 이문구 선생이다. <보기 싫은 새끼>가 충청도 언어로 가면 <장마철에 물걸레 같은 새끼>가 된다.

 

일전에 친구들과 술집엘 갔다. 안주가 마땅찮아 주저하고 있는데 빨리 안 시킨다고 안주인이 구시렁거렸다. 내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뱃속에 간도 있고 쓸개도 있고 곱창도 있고 다 있는데 뭐하러 안주 먹어요. 술만 넣어 주면 되지.”

 

이문구 선생의 단편 <우리동네 김씨>에 나오는 말이다.

 

이정록 시인도 충청도 출신이다. 그가 최근에 아들 운동화를 빨다가 갑자기 무릎을 치며 웃었다. 자기가 아들녀석 나이였을 때 뭔가를 잘못해서 선친께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저 운동화나 씹어 먹을 자식>이 그건데 무슨 내용인지 오래도록 알지 못하다가 아들 운동화 빠는 순간에 깨달은 것이다(도대체 무슨 말일까. 힌트. 댓돌에 신발 벗어 놓으면 누가 와서 이빨로 씹을까).

 

요즘 그는 아들이 잘못했을 때 해줄, 상처가 되지 않고 되레 웃음이 나는 그런 욕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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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스크랩해놓은 글들을 살펴보다가 이 글을 읽고 참으로 유쾌하게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만하면 충청도 말이 사유가 있는 철학적 언어라고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어떤 이들은 충청도의 말이 느리다고, 어눌하다고, 그 특성만을 가지고 싸잡아 멍청도라 부르기도 하지만,

속을 드러내지않고 한템포 느리다는 것이 지역적 약점이 되어서 더러는 정치적으로 야유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직설이 아닌 비유와 은유가 주는 충청도 말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알게된다면. . .

그저 느리고 둔한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의 반전과 함축적인 표현의 묘미를 알게된다면. .

말과 행동으로 그저 느리다고 규정해 온 충청도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지독한 편견인지 알게될겁니다.

 

저는 뼛 속까지 충청도 사람입니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자라 충청도 남자와 결혼해서 충청도 아이 셋을 낳고 지금까지 충청도에서 살고 있으니 흔한 말로 오리지날 충청도 사람인거지요.

 

여러지역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어떤 말을 해도 자기 주장이 강해보이지않아 쉽게 사람들 눈 밖에 나는 일 없고,

느린 말이 주는 부드러운 인상때문에 경상도나 전라도, 어느 지역의 사람들과도 부대낌없이 쉬이 어우러지고,

감정이 앞서는 목소리와 억양보다 느리고 촌스럽지만 그래도 해야할 말은 따박따박 다 하고야마는, 전형적인 충청도 사람입니다.

 

감정을 드러내지않는 것이, 굳이 이 편이다 저 편이다 속을 드러내지않는 것이 어떤 이들에겐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황희정승의 여담처럼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는 식의 중립적 관점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굳이 비판받을 일은 아닐겁니다.

지형적으로 역사적으로 수난이 많은 지역이다보니 궁리가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해명이 그럴듯하게 납득이 되는 것도 태생적으로 말이 느린 것이 아니라 생각을 먼저 하고 말을 하기때문에 직설을 유보한다는 데 공감을 하기때문입니다.

 

느린 어감때문에 똑 부러지는 맛은 없지만 듣고나면 축축 늘어지는 말끝까지도 투박해서 오히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얼마나 짧고 간결한지 이런 예시를 보면 이해하실라나요?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충청도 사투리 : 깐겨 안깐겨

 

보신탕 드실 줄 아세요?

 

충청도 사투리 : 개 혀?

 

한 번 웃으셨나요? 이런 함축적인 반전과 해학이 있는 말이 바로 충청도 사투리입니다. 느린만큼 짧게 말하니 어찌보면 느리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