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소원 /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
문밖의 가을이 짙어질수록 가을의 소원이 깊어집니다.
길을 걷다가도 나는, 물드는 단풍이었다가 바람에 흩어지는 한잎이었다가 또 갈길잃은 낙엽입니다.
가을의 풍경 속에는 나 닮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그를 닮은 것인지 그가 나를 닮아가는 것인지 하릴없는 의문도 많아집니다.
길 건너 버스정류장의 배경이 된 공원의 풍경에는 며칠새 붉은색 물감이 많이도 번졌습니다.
공원에 있는 모과나무 열매를 털던 사람들이 공원가에 주차된 내 낡은 자동차에도 상처를 남겼습니다.
미안하다 그분들이 건네 준 아직 포로롬한 모과에도 떨어지며 긁힌 상처들이 안쓰럽게 남았습니다.
문밖엔 무차별 초고속으로 남하하는 가을인데 다연엔 초록빛이 더 늘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한아름 들여놓은 해바라기가 올해도 다연을 대표하는 가을빛인데 지천인 초록엔 빛이 바랩니다.
새식구가 많이 늘어서 이젠 포스팅도 부지런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쑥스러운 첫인사처럼 슬몃 전체 풍경으로 보여드리고 곧 하나하나 자랑하듯 이름들을 불러올리겠습니다.
끝은 곧 시작의 다른 이름이란 말처럼, 이 가을이 행복의 시작, 그 다른 이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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