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김선우

다연바람숲 2011. 8. 1. 20:08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존재하는 거니까. 실체가 없어. 공空하지.공한 상태로 우리는 저마다 존재하다가 네가 나를 점찍고, 음... 그러니까, 네가 나를 원하고서 나는 너의 모패드가 되기 시작한 거야. 필요한 나사가 조여지고 바퀴가 붙고 안장이 조립되고....... 인연이 모여서 나를 만드는 거야. 그러니 인연이 다하면 너의 모패드는 다시 사라지지. 각각의 부속품들로...... 내가 지금 모패드라는 이름으로 있기 위해서는 각각의 부속품들이 인연 따라 조화롭게 서로를 붙잡아줘야 해. 서로 의존해 있는 거지. 그러니 존재는, 상호 의존한 연기緣起적인 모임체야. 영원불변하는 게 아니지. 지금 반얀 나무 밑에 서 있는 나는 있기는 있되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으로 있는 것. 이런 '있음'을 지혜로운 이들을 무아無我라고 해. 혹은 공空이라고. 들어는 봤겠지?

 

                                                                                                                    page 77 <인연따라 존재하는 지금 나를 축복해> 중

 

왜 오로빌에 오게 된 거?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왜 과거형? 살아보니까 파라다이스가 아니거든. 기대했던 파라다이스가 아닌데 왜 안 떠나? 오로빌 바깥은 더 엉망진창이니까.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하는 눈빛.) 세상 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어. 우린 다만 꿈꿀 뿐이지. 조금씩 더 좋아지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꿈꾸고 노력할 뿐야.

 

                                                                                                                   page 83 <천국이란 것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중

 

 

문득 바람이 전하는 말이 들린다. <바가바드 기타> 속에 있던 말인 듯한데, 어디쯤이었던가. "세상에 거하라. 그러나 세상의 것이 되지는 말라." 온전한 자신을 잃지 않는 삶. 오로빌의 아이들이라면 이렇게 살아낼 수 있으리라.

 

                                                                                                                  page 125 <세상에 있자,그러나 세상의 것이 되지는 말자> 중

 

편안함과 자연스러움. 자발성과 배려. 이런 정서 속에서 청년들은 저마다 참 잘 스민다. 나는 물이예요, 나는 바람이에요, 나는 공기에요, 하는 것처럼. 혹은, 나는 사랑이에요,하는 것처럼.

 

파라다이스가 있다면 파라다이스의 조건은 행복일 것이다. 행복은 사랑으로부터 가장 크게 온다. 사랑하게 되면 행복해진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만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사랑까지 포함하는 이야기다.

 

                                                                                                                page 142~143 <어린 숲의 메아리,우리는 나무예요!> 중

 

사랑에 빠진 이들은 예쁘다. 지상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깊은 친밀감과 마법같은 일체감. 사람이 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랑의 감정이 있기 때문일 터.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지루할 것이냐. 사랑하지 않는 순간은 손해다. 설령 사랑 때문에 아프게 될지라도 사랑에 빠지는 것이 남는 장사다

 

                                                                                                                page 166 < 사랑에 빠진 이들은 예쁘다> 중

 

 

 

                                                                                                          김선우 산문집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