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입춘 부근

다연바람숲 2011. 2. 5. 18:47

 

설날 연휴를 건너오는 동안

소리 소문없이 입춘이 지나갔어요.

꼭 봄이 와서는 아니었는데

꼭 그날이 입춘이어서는 아니었는데

입춘인 어제는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 이른 봄맞이를 했어요.

이제 유리화병에 후리지아만 한아름 들여놓으면 될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봄을 참 많이 기다리게 됐어요.

꽃이 피면 꼭 가보고싶은 곳이 있어요.

이제 꽃 보러 갈 날도 멀지않았어요.

그런 기다림 속으로 슬며시 봄이 오고 있어요.

 

 

 

입춘 부근 / 조연호


  그 立春 부근은 너무나도 따사로워 나는 제방에 걸터 앉아 못생긴 꽃의 꽃말을 외웠다. 아무도 떠나지 않은 자리에 마음이 머물던 자국만 남아 있다. 어떤 책을 펼쳐 읽어도 마음 좋은 청춘은 만날 수 없던 날, 들풀이 머리칼처럼 야윈다. 늙은 개암나무 곁에서 허리를 굽혀 봄볕의 마음을 줍는다. 내가 꽃말을 외울 때마다 거짓으로 잎순이 부풀어 올랐다. 가난한 애인과 함께 부자의 마을에서 헤픈 상대방이 되고 싶던, 내 그리움이 가시에 찔려도 터지지 않았다. 따사로운 나무둥치들이 어린 양처럼 매매 울며 어미 숲을 부른다. 쑥 냄새가 나는 길을 걸었고 그 길가에 호들갑스레 꽃 피고 여동생의 책가방에서 화장품이 쏟아졌다. 찌처럼 조용히 그늘 위로 머리만 내민 봄볕은 자기를 물고 어둠 밑으로 순식간에 내려갈 바람의 입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춘 / 박라연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영역까지가

정신이라면

 

입을 봉하고 싶어도

몽둥이로 두들겨 패주고 싶어도

불가한 것

 

정신 속에도 사람의 형상이 있다면

눈곱도 떼어내고

칫솔질도 시켜줘야 할 텐데

땀 흘리는 일밖에 떠오르는 게 없어

겨울 내내 미륵산을 오르다가

무슨 선물처럼 전투기를 두 대나 만났다

온몸이 정신인 허공을 가르는 전투기

소리, 미륵산이 쫙쫙 갈라질 때

 

내 오래된 욕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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