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침묵하는 바람에게 말을 걸다

다연바람숲 2010. 12. 12. 19:35

 

 

 

 

 

 

 

 

 

 

 

 

 

 

 

 

 

 

밤눈 / 기형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 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바람의 온도로 너는 온다.

너의 온도로 바람은 불어온다.

어느 곳에도 너는 없고 어디에나 너는 있다.

 

속죄하듯 잎을 버린 나뭇가지들은

이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허공에 물결을 그리며 흔들리던 나뭇잎들은

결국 나무들이 끝끝내 버리고싶던 그들의 죄였을까

 

오늘은 바람에게 인사를,

이제 붙잡고 흔들어 줄 무엇이 없어서

자꾸 제풀에 차가워지는 겨울 바람에게 인사를,

그 냉소적인 침묵에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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