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다연바람숲 2010. 11. 18. 21:08

 

 

 

 

바닥 /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

 

 

살아남기 위해 잎을 버린 나무들이 바닥을 드러냈다.

바닥을 보이고서야 삶을 증명하는 것들

저 서럽게 시린 바닥을 핥으며

오늘은 까치 한마리 오래 울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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