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isco de Goya,(1746-1828), Nude Maja, c.1800, Oil on canvas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는 회화의 기원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코린토스에서 도자기를 구워 팔던 옹기장이 부타테스에게는 디부타데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딸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별의 아픔을 견딜 수 없었던 디부타데는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을 호롱불에 비춘 다음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윤곽선을 따라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시작이 되었다.
이 일화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영원한 초상으로 남기고 싶은 연인의 갈망이 얼마나 크고 강한가를 우리에게 잘 말해 준다. 실제로 지금까지 알려진 걸작 가운데는 예술가의 아내나 연인이 모델로 등장하는 경우가가 유난히 많다.
사랑하는 여인이 바뀔 때마다 그 여성으로부터 철저히 예술의 정수를 뽑아냈던 피카소와, 오직 자신을 위해 태어난 여자인 잔 에뷔테른을 무려 열여섯 점이나 그렸던 모딜리아니가 대표적인 예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처럼 예술가가 사랑한 대상을 작품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모델의 신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숱한 추측들 낳게 하는 작품도 있다. 그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18세기 ‘스페인의 예술혼’으로 칭송받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다. <벌거벗은 마하>는 고야가 그린 유일한 누드화인데다가 모델로 추정되는 알바 공작부인을 고야가 광기에 이를 정도로 사랑했던 만큼 모델에 대한 후세의 관심을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Museo del Prado, Madrid>
스페인 최고의 명문 귀족인 알바 공작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고야는 알바 공작부인과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마드리드 사교계의 비너스로 숱한 찬사와 질시를 받았던 알바 공작 부인과 천재 화가는 곧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격렬한 사랑을 불태운다.
그러나 유서 깊은 대귀족인 공작부인과 비천한 출신 화가의 사랑이 오래 지속될 리 없다. 알바 공작부인의 배신으로 끝을 맺은 이 사랑의 상처는 고야에게 평생토록 치유될 수 없는 진한 흔적을 남겼다.
고야는 알바 공작부인이 세상을 떠난 직후에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마하 그림은 재상 고도이의 비밀 진열실에 숨겨져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그림이 너무나 선정적이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스페인 전역에 퍼졌다. 그림에 대한 악명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높아지자 당황한 종교재판소는 고야를 소환해 음란한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구매자의 신분을 물었다. 그러나 고야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76 3/8 x 51 1/8 inches(194 x 130 cm), Private collection>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은 고야의 침묵은 모델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고야의 사후, 유명세가 높아질수록 요염하고 관능적인 모델의 정체를 캐려는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계속되는 추문에 시달리던 알바 가문은 마침내 1945년 선조 할머니인 알바 공작부인의 관을 열고 시체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체 발굴에 참여한 저명한 법의학자들도 그림 속의 모델과 공작부인과의 관계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이로써 마하의 모델에 얽힌 얘기는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되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다른 여인에게서도 늘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느낀다고 한다. 고야는 마하의 모델을 보고 그리면서도 끊임없이 알바 공작부인의 체취를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을 붓끝에 실어 그 사랑을 영원한 초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사람들이여. 마하의 모델이 누구인지 자꾸 캐묻지 마라.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신비다.
이명옥의 <사비나의 애로틱 갤러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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