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 김혜순
당신 속에는 또 하나의 당신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은 당신의 몸을 안으로 단단히 당겨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손톱은 안쪽으로 동그랗게 말려들고, 당신의
귓바퀴 또한 당신의 몸속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들고 있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이 당신을 당겨 잡은 그 손을 놓는 순간 당신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당신의 얼굴은 당신 속의 당신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모습 그대로 굳어져 있습니다 가끔 그 얼굴이 당신 밖의 내 얼굴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당신의 두 눈동자 속에서 나를 내다보는 당신 속의 당신을 내가 느끼기도 하지만 당신 속의 당신이 당신을 당겨 잡은 그 손을
놓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팽팽히 당겨져 있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그 긴장을 견디느라 이제 주름이 깊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은 또 얼마나 힘이 센지 내 속의 내가 당신 속으로 끌려들어갈 지경입니다
당신은 지금 붉은 포도주 한 잔 마시고 치즈를 손에
들었습니다
내 속의 나는, 치즈는 우유로 만들어졌다는 걸 상기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 우유는 어느 암소 속의 암소가 내뿜은 걸까
고민합니다
혹 당신이 멀리 떠나 있어도 당신 속의 당신은 여기에 또 있습니다 나는 당신 속의 당신을 돌려보내지도, 피하지도
못합니다
아마 나는 부재자의 인질인가 봅니다
내 속의 내가 단단히 나를 당겨 잡고 있는 동안 나 또한 살아 있을 테지만
심지어 나는 매일 아침 내 속의 나로 만든 치즈를 당신의 식탁 위에 봉헌하고 싶어집니다
'창너머 풍경 > 열정 - 끌리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욱한 사랑 / 김혜순 (0) | 2005.12.16 |
---|---|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 / 김선우 (0) | 2005.12.15 |
산청 여인숙 / 김선우 (0) | 2005.12.14 |
雲柱에 눕다 / 김선우 (0) | 2005.12.14 |
가구家具의 꿈 / 조덕자 (0) | 200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