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雲柱에 눕다 / 김선우

다연바람숲 2005. 12. 14. 17:49

 

 

雲柱에 눕다 / 김선우


  가시연꽃을 찾아 단 한번도 가시연꽃 피운 적 없는 운주사에 가네 참혹한 얼굴로 나를 맞는 불두, 오늘 나는 스물아홉살.
  이십사만칠천여 시간이 나를 통과해갔지만 나의 시간은 늙은 별에 닿지 못하고 내 마음은 무르팍을 향해 종종 사기를 치네 엎어져도 무르팍이 깨지지 않는 무서운 날들이 만가도 없이 흘러가네

  운주에 올라, 오를수록 깊어지는 골짝, 꿈꾸는 와불을 보네 오늘 나는 열아홉살.
잘못 울린 닭울음에 서둘러 승천해버린, 석공의 정과 망치 티끌로 흩어졌네 거기 일어나 앉지 못하고 와불로 누운 남녀가 있어 출렁, 남도땅에 동해 봄바다 물밀려오네

  참 따뜻하구나, 물속에 잠겨 곧 피가 돌겠구나
걷지 못하는 부처님 귀에 대고 속삭였네 달리다쿰, 달리다쿰! 누가 자꾸 내 귀에 대고 소녀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였지만,

  운주에 눕네 엄마를 기다리다 옷장 속에 숨어 홀로 든 낮잠처럼, 오늘 나는 아홉살.
낮꿈 밤꿈 지나 새벽꿈에 이른 나는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졌네 더욱 넓어진 바닷속에 누워 바라보네 동해 깊은 물, 어머니 몸속 어딘가 묻혀 있던 구근에서 꽃대가, 생살-물의 살을 찢고 솟구쳐오르는 것을, 핏덩어리 꽃숭어리-태양이 뜨는 것을

  온 바다에 가시처럼 박혀 흔들리는, 문둥이 부처님들 사이에 누워 울었네 울지 못했네 출생 이후 나는 잠들기 시작하였으니 꽃을 벗어나고 있는 가시연꽃을 끝까지 바라볼 수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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