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응용 - How?

[스타의 집] 인생을 영화처럼

다연바람숲 2019. 1. 30. 14:05

their own set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고 세트 디자이너 캐서린 마탄 부부의 뉴욕 타운 하우스



타운 하우스의 웅장한 계단. 벽면에 사용한 페인트는 ‘심플리 화이트’ 컬러로 Benjamin Moore.

2층 화이트 룸에서 고샤 루브친스키 수트를 입고 프라다 스니커즈를 신은 바즈 루어만과 이자벨 마랑 원피스에 바네사브루노 부츠를 신은 캐서린 마틴. 샹들리에는 부부가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던 것을 그대로 살렸고, 웨스트 엘름에서 구입한 곡선형 소파에는 텍스타일 브랜드 모컴과 협업한 마틴의 컬렉션 패브릭을 씌웠다. 벽에 걸린 사진 중 오른쪽은 포토그래퍼 렉스 두페인의 작품.


침실에 놓인 침대는 Tracey Boyd. 침대 머리맡 양쪽의 램프는 Rejuvenation. 화분은 Anthropologie. 벽지와 베드 스프레드, 쿠션은 모두 Catherine Martin for Mokum.


1층의 그린 룸. 소파는 Restoration Hardware. 암 체어와 빈티지 셰이즈 의자, 주문 제작한 오토만 의자, 쿠션에 씌운 패브릭은 모두 Catherine Martin for Mokum. 가죽 의자는 Anthropologie. 커피 테이블은 Tracey Boyd. 샹들리에는 Jonathan Adler.


영화 <물랑루즈>와 <로미오와 줄리엣>은 개봉 당시의 흥행과 화제도 대단했지만 비주얼 면에서 장대한 스케일과 놀라운 디테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또 2002년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오페라 <라 보엠>도 세심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거친 무대 장치와 연출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 작품의 공통점은 바즈 루어만(Baz Luhrmann)과 캐서린 마틴(Catherine Martin) 부부의 손을 거쳤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부터 잘 통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 모두 불가능에 도전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높은 완성도의 작품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집을 꾸미는 일도 취미 삼아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임대주택에서 이곳 타운 하우스로 이사한 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무려 4개월이 걸렸다(이 시간을 바즈 루어만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비유하곤 한다). 마틴은 1852년에 지어진 이 주택을 찾아낸 장본인으로 이사에 앞서 인근의 교육 수준과 인종 다양성, 동성 부모의 인구 분포 등에 관한 통계치를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조사했다. 심지어 남편을 위해 미래에 완성될 이 집의 모습을 목업 제작, 3D 드로잉, 시안 보드, 인테리어 컨셉트 프레젠테이션까지 감행했다. “바즈에게 뭔가를 설명할 때는 감독인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니까요.” 30여 년 동안 창작자로서 합을 맞춰온 마틴의 부연 설명이다.

프로덕션 ‘바즈마크(Bazmark)’를 운영하며 각종 영화제를 휩쓸어온 두 사람은 호주 출신으로 2013년 <위대한 개츠비> 촬영 즈음에 뉴욕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당시 살던 그리니치 빌리지 임대주택을 그대로 구입하려 했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10대 자녀, 딸 릴리언과 아들 윌리엄을 위해 좀 더 넓은 공간을 찾게 됐고, 앵글로-이탤리언 양식의 이 주택을 구입함으로써 마침내 확실한 뉴요커로 정착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꿈을 꾸고, 런던에서 신나게 놀고, 할리우드에서는 일을 하자. 시드니는 내 고향이고, 뉴욕은 내가 살아가는 곳. 이게 제 인생철학입니다.” 바즈가 뉴욕에 정착하게 된 이유다.

파우더 룸에 있는 세면대는 Toledo Architectural Artifacts. 벽면의 돌출 촛대는 Restoration Hardware. 천장 등은 Anthropologie. 거울은 Restoration Hardware Teen. 벽지는 Catherine Martin for Mokum.


영화 <물랑루즈> 촬영장에서 가져온 실크 햇, 더글러스 커크랜드의 사진, 인도에서 구입한 앤티크 조각상이 웨스트엘름 콘솔에 진열돼 있다


커피 테이블 안에 가지런히 놓인 손 모양의 조각품과 성냥갑은 Jayson Home. 꽃병은 CB2.


폭이 8.5m밖에 안 되는 주택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의 세트장을 그렇게 많이 디자인해 봤는데도 막상 내 집을 꾸미려니까 의사결정이 어렵더군요. 영화 세트를 디자인할 땐 실수해도 용납이 됐어요. 페인트 컬러를 설령 잘못 골랐다 해도, 그게 누군가의 수명을 단축시킬 정도는 아니잖아요(웃음)? 전체적인 무드를 완성하는 게 세트 작업이라면, 하나하나가 거슬리지 않도록 하는 게 홈 인테리어 과정에서 중요했어요.” 마틴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는 이 집이 원래 가지고 있던 개성에 ‘바즈마크 식’ 터치를 더해 완성도를 높인 놀라운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엔 좀 어두운 분위기였던 현관 입구는 토넷의 앤티크 테이블을 배치하고 바닥에 붉은 색의 루이 드포르테르 러너를 깔아 빅토리언 시대를 고풍스럽게 재현하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게다가 이 테이블과 러너는 2008년 작품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세트로 사용했던 것이다! 원래부터 집에 설치되어 있던 벽난로 둘레의 그린 컬러 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방 전체를 짙은 초록색으로 꾸며 ‘그린 룸’이라 부르는가 하면, 천고가 약 5m나 되는 2층의 넓은 공간은 차가운 얼음이 연상되는 빈티지 암체어를 놓고 크리스털이 반짝이는 앤티크 샹들리에를 달아 차분하게 휴식할 수 있는 ‘화이트 룸’으로 꾸몄다.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친구이자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 부부의 공동 작업이었던 영화 <물랑루즈>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연배우 니콜 키드먼의 증언은 이렇다. “바즈와 마틴의 삶은 예술 작품 같아요. 타고난 예술적 감각도 항상 놀라움을 선사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 또한 언제나 예술적 감성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래서 전 종종 두 사람을 ‘르네상스 사람들’이라고 불러요. 현대인들은 삶의 영역에선 멋을 포기하곤 하는데,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얼마나 박학다식한지, 꼭 르네상스 시대의 종합예술가들이 환생한 것 같아요.” 이런 극찬에 대해 마틴은 답한다. “우린 우리 인생을 최고급으로 대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엘리트주의나 사치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것에 있어 최고의 순간, 본질적으로 가장 최선인 순간을 찾고자 노력하는 거죠. 이건 우리 방식의 삶에 대한 존경이에요. 가끔 침대에 앉아 있다가 생각해요.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방의 주인이 나라니!”


에디터 이경은

글 VANESSA LAWRENCE

사진 JAMES MERRELL

스타일리스트 ROBERT RUFINO

디자인 황동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