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모아온 정든 가구 한 점 버리지 않고 생애 첫 인테리어 개조에 성공한 집이 있다.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형성된 가족의 정서가 반영된 리얼 하우스.
집주인 윤회수 씨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부터 10여 년 넘게 사용했던 가죽 소파와 커피 테이블을 살려 연출한 거실. 암체어와 발코니 창가에 둔 책상과 의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기존 가구와 어울리는 것으로 매치해주었다.
삶의 역사, 인테리어 디자인의 테마가 되다
집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현관이라 했을 때, 이 집은 현관에서 받은 따스한 느낌이 집 안 곳곳에서 일관되게 이어지며 보는 이의 마음속에 ‘진정성’이라는 따스한 느낌을 선사한다. 묵직한 색감의 도어와 몰딩이 무게중심을 잡는 가운데 골드 프레임의 앤티크 조명이 바닥의 화려한 패턴 타일을 비추면 나를 환영해주는 ‘우리 집’에 당도한 듯한 착각이 들고, 거실에 들어서면 부지불식간에 푹신한 암체어로 발길이 향한다. 어디 그뿐인가. 다이닝 룸에서는 앤티크 그릇장 안에 진열된 예쁜 커피잔을 꺼내 들고 샹들리에 아래 식탁에서 티 타임을 갖고 싶게 만든다. “집을 개조하기 위해 여러 디자이너를 만났는데, 대부분 제가 갖고 있는 앤티크 가구를 버리지 않고는 개조가 힘들 거라고 조언하더군요.” 영상의학과 의사이자 두 아들을 둔 워킹맘 윤회수 씨는 큰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시점에서야 집 개조를 결심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던 터. “물론 새로 고치는 집이니 요즘 트렌드에 맞춰 확실히 변모시키고 싶은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죠. 하지만 정이 들고 애착이 가는 살림살이를 버려가며 개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간결한 프렌치 시크 스타일로 거듭난 집
모처럼 계획한 인테리어 개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윤회수 씨에게 구원투수가 되어준 이는 디자인 폴(Design Pole)의 박미진 대표였다. 유럽 각지를 돌며 앤티크, 빈티지 소품과 가구를 틈틈이 모아 온 박미진 대표는 자신의 컬렉션으로 숍을 운영하고 있기에 윤회수 씨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집주인이 갖고 있는 가구 대부분은 미국에서 생활할 때 구한 것들이에요. 이웃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면서 내놓은 그릇장부터 부부가 직접 가구 숍과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며 구한 침대와 의자 등 어느 것 하나 사연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었죠.” 박미진 대표는 윤회수 씨가 갖고 있는 가구를 중심으로 집 전체를 통일감 있게 디자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간결하면서도 앤티크 스타일이 포인트가 되는 프렌치 시크 스타일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볼륨이 큰 헤드보드가 있는 침실은 심플한 몰딩과 단색 벽지 배색으로 깔끔한 배경을 만들어 침대 자체만으로도 침실 분위기가 완성되도록 했고, 장식적 요소가 돋보이는 그릇장이 있는 다이닝 룸은 짙은 색의 단색 벽지로 무게감을 잡아주면서 대리석과 브라스로 만든 앤티크 샹들리에를 매치해 화려한 기품을 더했다.
가족과 교감하는 집을 완성하다
‘잃어버린 짝’을 찾아 완벽한 세트를 완성한 느낌이랄까. 집주인이 갖고 있던 가구를 활용해 개성을 살릴 수 있었던 데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미진 씨가 적재적소에 곁들인 앤티크 조명과 소품의 힘이 크다. “하지만 이 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단열 공사와 마스터 룸의 구조 변경이었어요.” 윤회수 씨는 같은 아파트 내에서 이사한 경우로, 집의 설비와 구조적인 장단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터. 일산 신도시가 생기면서 초창기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인 만큼 단열 문제를 해결하고 비효율적인 공간을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윤회수 씨가 직접 손 편지를 써서 이웃에 양해를 구할 만큼 대대적인 공사를 해야 했지만 개조 후 처음 겨울을 난 결과 가족은 시각적으로나 체감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한 집에서 아늑하게 지낼 수 있음에 만족했단다.
“집을 고치고 나니 중학생 막내아들이 학급 여자친구들을 자주 초대해서 놀아요. 친구들이 집이 예쁘다고 칭찬하니 기분이 좋은 거죠.” 여성스러운 느낌의 집이라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싶은 첫째 아들의 반응이 궁금한 찰나, 윤회수 씨가 말한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앞으로 우아하게 살아야겠다”는 표현을 하는가 하면 남편은 “우리 집만 한 곳이 없다”는 칭찬 일색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집에만 있으려 한다는 거예요. 휴가 차 머물렀던 호텔도 우리 집만 못하다면서 말이죠. 앞으로도 이러면 정말 큰일인데(웃음).”
기획 : 정미경 기자 | 글 : 이정민(프리랜서) | 사진 : 김덕창 | 디자인·시공 디자인 : 폴(032-8017-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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