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봄의 미안 / 이은규

다연바람숲 2018. 5. 27. 14:57

 

 

봄의 미안 / 이은규

 

 

누가

봄을 열었을까, 열어줬을까

 

허공에서 새어나온 분홍 한 점이 떨고 있다

바다 밑 안부가 들려오지 않는데, 않고 있는데

 

덮어놓은 책처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말을 반복했다

미안

잘못을 저지른 내 마음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

이제 그 말을 거두기로 하자, 거두자

 

슬플 때 분홍색으로 몸이 변한다는 돌고래를 보았다

모든 포유류는 분홍분홍 울지도 모른다

 

오는 것으로 가는 봄이어서

언제나 4월은 기억투쟁 특별구간이다

그렇게 봄은 열리고 열릴 것

 

인간적인 한에서 이미 악을 선택한 거라고 말한다면

그때 바다에 귀 기울이자

슬픔은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그 무엇이어서

봄은 먼 분홍을 가까이에 두고 사라질 것

 

성급한 용서는

이미 일어난 일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만든다

오래 이어질 기억투쟁 특별구간

 

멀리서 가까이서 분홍분홍 들려오는 밤

덮어놓은 책은 기도와 같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오고 있을 문장은 기도가 아니라 선언이어야 할 것

 

봄을 닫기 전에, 닫아버리려 하기 전에

누군가

 

 

 

.

'창너머 풍경 > 열정 - 끌리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의 어느 일요일 / 최정례  (0) 2019.01.21
꽃 아닌 것들이 / 이사라  (0) 2018.04.11
슬픔은 헝겊이다 / 문정희  (0) 2018.03.07
봄길 / 정호승  (1) 2018.02.26
카프카의 편지 / 신용목   (0) 2018.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