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미안 / 이은규
누가
봄을 열었을까, 열어줬을까
허공에서 새어나온 분홍 한 점이 떨고 있다
바다 밑 안부가 들려오지 않는데, 않고 있는데
덮어놓은 책처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말을 반복했다
미안
잘못을 저지른 내 마음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
이제 그 말을 거두기로 하자, 거두자
슬플 때 분홍색으로 몸이 변한다는 돌고래를 보았다
모든 포유류는 분홍분홍 울지도 모른다
오는 것으로 가는 봄이어서
언제나 4월은 기억투쟁 특별구간이다
그렇게 봄은 열리고 열릴 것
인간적인 한에서 이미 악을 선택한 거라고 말한다면
그때 바다에 귀 기울이자
슬픔은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그 무엇이어서
봄은 먼 분홍을 가까이에 두고 사라질 것
성급한 용서는
이미 일어난 일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만든다
오래 이어질 기억투쟁 특별구간
멀리서 가까이서 분홍분홍 들려오는 밤
덮어놓은 책은 기도와 같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오고 있을 문장은 기도가 아니라 선언이어야 할 것
봄을 닫기 전에, 닫아버리려 하기 전에
누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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