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순수 - 비우는말

지혜로운 삶을 위한 조언

다연바람숲 2018. 2. 9. 16:12

 

 

 

 

 

 

 

 

 

 

 

 

 

 

 

 

 

 

 

- 사람은 그 자체로 기적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마음 안에 그 한 사람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더 기적이지요.

 

- 가능하면 사람 안에서, 사람 틈에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지요. 선뜻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지요. 사랑은 사람보다 훨씬 불완전하니까요. 아, 불완전한 것으로도 모자라 안전하지 않기까지 하네요 사랑은.

 

-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했습니까. 무엇으로 얼굴이 붉어졌습니까. 그런데도 그 좋아했던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지요.

 

- 세상 모든 사랑의 속성은 결국엔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는 거라고. 모든 사랑의 끝에서는 자기 자신만 용서하게 된다고. 그런 방어기제조차 없으면 다리가 꺽이고 마음이 잘려나간다고.

엄마는 하지 못했지만 너는 사랑을 하라고, 어떻게든 사랑이 나를 밟고 지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며 모르게 될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엉킨 선도 풀어나갈 힘이 없는 거라고.

 

- 내가 한 것이 정녕 사랑인가를 묻는 것이라면 그만두게. 내 대답으로 인해 내가 따라 걸었던 빛들이, 신었던 신발들이, 그리고 그 물컹한 푸른빛들이 자네 상식 안으로 이해되길 원치 않네. 사랑은 불가능의 결정(結晶)인 상태의 것이라 모두가 쩔쩔매는 것이고 그토록 뼈저린 것 아니겠는가. 많이 사랑한 죄였을 것이네. 죄인 줄 알면서도 사랑한 병(病)이 있을 것이네.

 

-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 우리는 사랑에게 엄청난 많은 것을 배웠으므로 그만큼의 빚을 지고 산다. 그것도 갚을 수 없는 아주아주 큰 빚을.

 

-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계절이 도착하고 계절이 떠나기도 한다. 나에게는 가을이 왔는데 당신은 봄을 벗어나는 중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사랑이 시작됐는데 당신은 이미 사랑을 끝내버린 것처럼.

그러니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를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이병률 여행산문집 <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