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몸살 / 이병률

다연바람숲 2018. 1. 17. 13:40

 

 

 

 

몸살 / 이병률

 

 

한번 녹으면 영원히 얼지 못하는 얼음처럼

한번 아픈 것이 영원히 낫지 않는다

낫지 않으니 축척이다

독을 내몰고 새 독을 품으려니 갱신이다


이 몸이 불길을 지킬 것이니

몸아, 몸을 귀찮게 마라


피와 식사에 애틋하게 관여하고

영혼의 물을 흘리며

우리는 조금 더 늙겠지만


어쩌면 이토록 한 사람 생각으로

이 밤이 이다지 팽팽할 수 있느냐


저리도 곡선으로 떼를 지어 할 말이 많은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곳으로 이끌리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냐


어제는 단어가

오늘은 전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암시가 있으려나

사랑이 끝나는 자리에 한 번쯤 미리 다녀오라고

새가 자꾸 울어대더라도

살(煞)은 절(寺)이어서 명치가 깊다


몸살아, 다 그만두고

어떤 연애처럼

비밀 하나 입에 넣고 열지를 말았으면

마음에 눈금을 표시해 거리를 기록해두었으면 한다

몸살아, 술잔 놓고 농담하러 가자

 

그러다 그러다 안 되면 허물어버린 것들이 쌓이고

묻어 버린 것들은 돋아나기 시작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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